정희채 어르신의 황혼 재혼기 <5>
정희채 어르신의 황혼 재혼기 <5>
  • 정희채
  • 승인 2009.02.23 15:27
  • 호수 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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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에피소드 ①

우리나라의 노년 인구가 500만, 인구 비율로 10%를 넘어섰다. 평균연령은 조만간 80대에 육박할 예정이다. 더 이상 과거의 나이에 대한 인식은 무의미해 졌다. 최근 들어 가장 큰 변화는 황혼재혼으로 대변되는 노년세대의 적극적인 반려자 찾기다. ‘열 효자보다 악처 하나가 낫다’라는 말은 인생에서 반려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본지는 신년 특별기획으로 정희채(78) 박혜숙(69)어르신의 사례를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정희채 어르신은 16년간의 재혼생활을 꼼꼼하게 육필로 눌러 써 내려왔다. 본지는 정 어르신의 소중한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해 독자여러분들께 성공적인 황혼재혼의 요소를 20회에 걸쳐 소개한다.

처음의 부풀었던 기대와는 달리 가난한 홀아비로서 여성들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개 돈푼깨나 있다는 과부들은 별로 잘나지도 못했으면서 하늘 높은 콧대를 거들먹거리기 일쑤였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여성들이 어렵게 재혼을 이루어 그 돈으로 만족스럽게 잘 살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어서 ‘더 가져와라, 안 된다 도로 내 놓아라’며 법정다툼까지 하는 재혼 팀들이 부지기수였다. 돈 문제로 서로 싸우다가 결국은 파혼에 이르게 된 팀들이 수도 없었다. 그렇게 파혼을 하게 되면 돈 문제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하나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참으로 별나다 싶은 사람도 더러 있었다. 내가 황혼재혼에 성공하기 전까지 만난 여성들 중에도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전할 만한 이가 여럿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엉뚱하고도 재미나는 일 들이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추려 잠깐 늙은이들의 내면세계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겠다 싶어 소개한다.

  Episode 1    내가 원우회에 출입한 지 세 번 째 되는 날이었다. 내 자리에는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바로 옆에는 그동안 안면을 튼 홍 여사가 있었다. 홍 여사는 점잖게 커피나 한 잔 하시겠냐고 묻기에 흔쾌히 좋다고 말하고 다방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앞으로 잘 사귀어보자는 말을 나누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자기는 부동산을 하고 있으며 집을 대여섯 채 된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돈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자신의 소개를 갈음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이런 사람은 십중팔구 다른 결함이 있다.

그 이후로도 서너 번 만나면서 부동산 관련 심부름도 해주고 다소 친숙해 졌다. 그러나 만나 볼수록 인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한 가지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내가 다른 여자와 말하는 것을 보지를 못하는 것이다. 친밀함과 격식을 떠나서 어떤 방법을 써서든지 떼 놓았다. 내가 다른 여자 분과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눈을 흘기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어느 날 한번은 다른 여성회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껴들어서는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으며 밀쳤다. 안 그래도 그동안 쌓인 감정이 많았던지라 순간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것 보세요! 내가 홍 여사 남편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왜 이렇게 사생활까지 간섭하면서 무례하게 굽니까?”

화를 벌컥 냈더니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우리 쪽으로 집중됐다. 그 이후 홍 여사는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이렇게 질투심이 강한 여자도 있었다.

 Episode 2    기원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버스를 타려고 바삐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다급히 나를 부르며 쫓아왔다.

“정 선생! 정 선생!”

돌아보니 원우회 여성회원 한 분이 숨차게 걸어와 나를 붙잡았다. 숨을 몰아쉬면서 굉장히 다급한 표정이었다.

“정 선생, 잠깐 차나 한잔 합시다. 할 말이 있어요.”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가 싶어 다방을 찾아 들어갔다.

그 여자 분은 자리에 앉아 채 차가 나오기도 전에 다급하게 이야기의 서두를 꺼냈는데 그것이 또 황당한 일이었다.
“정 선생, 저하고 결혼합시다.”
“예? 허허허…”

나는 농담삼아 한번 해본 소리로 알고 웃고 말았다.
“웃지 마세요. 저는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다.

“나는 역학을 하는 사람인데 정 선생 기원에다 역학 간판을 같이 달고 장사를 하면 잘 될 것 같아서 진심으로 말씀 드리는거에요.”
“아니 그런 훌륭한 학문을 하시는 분께서 초면에 그런 일방적인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지요. 내일 지구가 망하는 것 아니니까 차차 만나가면서 얘기 합시다”

그 여자 분은 안면은 있었으되, 별로 대화도 나누지 못했던 사이였다. 아무리 역학을 공부해서 내가 자신의 배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들 초면에 결혼하자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올만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여자 분에게 좋은 말로 달래 좀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며 돌려보냈다. 입에서 헛헛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리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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