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인을 찾아서 32 - 김복순(100) 어르신
100세인을 찾아서 32 - 김복순(100) 어르신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02.23 15:31
  • 호수 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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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남에게 폐 끼친적 없었어…”

어릴때 허약… 어머니가 새벽 벼이슬 털어다 먹여
손재주 뛰어나 그림ㆍ목공예ㆍ전자제품 수리 등 만능
하루 밥 한공기 채식위주 식사… 종일 바삐 움직여


▲ 김복순 어르신
2008년 9월 인사동에서는 특별한 그림 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주최한 ‘여성작가 날개달기 프로젝트’로 선정돼 전시회를 가진 5명의 작가 중 한 명인 박승예(36)씨의 작품 ‘김복순, 외할머니 백년동안의 고독’ 이었다.

자라온 환경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구조 속에서 100년을 묵묵히 살아온 김복순(100)어르신. 온전히 한 번도 자신의 이름과 존재로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던 외할머니의 삶이 안타까워 할머니의 이름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박승예 작가의 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작품 속의 주인공, 모진 세월을 딛고 당당히 100세인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린 김복순 어르신을 만났다.

김복순 어르신은 1909년 경남 마산의 평범한 농가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김 어르신의 어머니는 80대에 사망했고, 동기들도 대체로 장수했다. 그러나 김 어르신은 어릴 때 무척 몸이 약했다고 한다. 어르신의 모친은 몸이 약한 막내딸을 위해 새벽녘 벼에 맺힌 이슬을 털어 먹이곤 했다.

집안이 중농 정도의 살림이었기에 유년시절 유복하게 자랐지만 배움의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몰래 서당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머슴을 시켜 잡아 앉힌 이후 배움은 끊겼다. 하지만 영민한 어르신은 독학으로 언문을 깨쳤다.

남달리 손재주가 뛰어난 어르신의 한복 짓는 솜씨는 근동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고, 다방면에 예술적인 재능을 보였다. 목공예, 그림을 비롯해 전자제품을 수리하거나 손수 고안한 쥐덫을 만들고, 구들을 놓는 등 만능의 솜씨를 보였다.

젊어서 빼어난 미모에 뛰어난 솜씨까지 갖췄던 어르신은 영화 줄거리 같은 결혼을 했다. 창원과 마산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청년사업가가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어르신을 보고 수소문해 혼담을 넣었던 것.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부모 뿐 아니라 큰댁 식구까지 함께 살던 시집살이는 말로 하기 어렵게 고됐다. 더구나 시아주버님이 사망하자 김 어르신은 큰집 살림까지 맡아야 했다. 시어머니는 장손의 아이들을 끔찍이 아꼈고, 손자들이 흘리는 코를 빨아먹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그 사랑은 김 어르신에게는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6남매보다 큰집의 아이들을 거두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었다.

6·25를 즈음해 믿고 의지하던 남편도 세상을 떴다. 아들들은 군대에 징집돼 학업을 그만 뒀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땅을 팔아야만 했다. 논 한 평을 판 값이 쌀 한 되. 당장 굶어죽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위와 자식들은 군에 끌려가 몇 년 째 생사도 알 수 없었다.

▲ 김복순 어르신 가족. 외손녀 박승예 작가(왼쪽)와 막내 따님 권말년씨.
이때 얻은 화병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위장병으로 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 아들들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큰 아들은 신경쇠약증세를 보였고, 가산이 모두 탕진된 상태였기에 가세를 일으킬 여력은 없었다. 남달리 똑똑했던 아들들의 앞날이 불투명하게 된 상황을 놓고 김 어르신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현재 어르신은 모시고 있는 막내딸 권말년(63)씨는 어려서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면 독하고 억척스러워야 하는데 김 어르신은 평생을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살아오다 보니 억울한 적이 많았다고 전했다.

여리고 순한 성격이지만 내적인 자존심은 누구보다도 강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런 성격 탓에 어려운 삶을 살아왔지만 그것은 결국 자산으로 남았다. 어머니가 주무실 때 자녀들이 몇 번씩 돌아보며 이불을 덮어드리는 것은, 김 어르신이 끝내 놓지 않았던 ‘온화함’에 대한 보상이었다. 자녀들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어머니께 대드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육식을 거의 하지 않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신다는 김 어르신은 생선과 나물을 즐긴다고 했다. 남들에 비해 소식하지만 때에 맞춰 먹기보다는 밥 한공기를 갖고 하루종일 조금씩 드신다. 잠이 유독 많아 낮잠도 주무시지만 밤잠도 잘 주무시고,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깔끔하게 몸단장을 한 후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하루 종일 몸을 쉬는 법이 없다는 김 어르신. 할 일이 정 없을 때는 혼자서 그림도 그린다고 했다. 90대 중반에 그렸다는 나비그림은 박승예 작가가 보기에도 미적인 감각이 뛰어난 색채의 조합을 보여준다고 했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그것을 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한 김복순 어르신. 그러나 지난한 100년의 삶을 통해 보여준 뛰어난 인성과 재능은 후세에 전해져 이 땅을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는 없을 듯하다.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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