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回春) - 19
회춘(回春) - 19
  • 서진모
  • 승인 2009.02.27 17:41
  • 호수 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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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여자의 욕망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사건, 보디발의 아내가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하인으로 들어온 요셉이란 청년을 안방으로 끌고 들어와 동침을 요구했고 요셉은 옷까지 벗기고도 끝내 그 유혹을 뿌리쳤다가 오히려 강간 미수범으로 몰렸다는 일화였다.

그렇다. 어쨌든 나는 지금 이 여인의 욕구를 뿌리칠 수 없다. 그래, 갈 데까지 가 보는 거야. 나도 자칫하면 요셉과 같은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괜히 이 여자의 감정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떤 트집을 잡아서라도 나를 내 쫓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 욕정의 화신이 되어 오로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차에 몸을 싣고 달려오는 여인의 육탄 공세에 대해 준식은 막아낼 인내력도 정체성도 점점 상실하고 있었다.

여자가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면 성인군자나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남자의 정신은 혼미하게 마련이다. 그것을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틀에 묶어 놓고 본능을 구속하는 것은 남녀칠세 부동석을 양반의 기본자세로 생각하던 구시대적 사고의 잔재일 뿐이었다. 성의 자유와 개방의 물결이 춤을 추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내가 왜 이렇게 망설이고 앞뒤를 잣대질 하고 있는가 싶은 생각도 준식을 강력히 비호하고 있었다.

준식은 순종적인 노예의 눈빛을 한 채 알몸으로 누워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흥분과 희열의 입구인 동시에 고뇌의 출구인 거기 수밀도 짙은 꽃술. 준식은 꽃가루를 빨아 먹기 위해 꽃술에 깊숙이 머리 박은 한 마리 호랑나비가 되어보고 싶었다.

그래. 한 마리 호랑나비. 그 나비의 현란한 입놀림과 날갯짓에 여인의 다리는 경련을 일으켰고 상체는 활처럼 휘어져 다시 절정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아이. 죽겠어. 나 죽겠어.”
행복한 통증과 더불어 또 한번 아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여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뜨거운 정사의 태풍은 환희의 찬가로 울려 퍼졌다.

아~아! 음! 음! 사!랑!해!

오색 찬란한 구름 마차가 하늘을 날았다. 그렇게 황홀하고 한없이 에로틱한 사랑의 춤을 추고 있었다. 희열이 몸부림을 쳤다. 진하고 뜨거운 욕망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는 최고의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껏 나에게 이보다 더 행복한 날이 있었던가. 외로운 여자의 가슴에 뿌려진 남자의 진한 향기. 진정한 남자의 향기는 이불 속에서 난다더니 정말인가 싶었다.

준식의 몸 향기가 초여름 밤 밤꽃 향기처럼 강하고 습하게 온 방안과 온 몸을 엄습했다. 남편이란 남자와 의무 방어전을 치를 때는 끝나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뒷물을 했는데…. 그런데 왜 이럴까. 이 남자의 체액은 단 한방울도 씻어내고 싶지가 않으니 이건 어찌된 노릇인가.

며칠이 지나 숙경의 생일날이었다. 숙경은 그날만은 남편이란 사람이 생일 축하 꽃바구니라도, 아니면 축하 케이크 상자라도 사서 보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저녁 7시가 넘어도 남편이란 사람은 전화 한 통 조차 없었다. 숙경은 속으로 매우 섭섭했다.

남자란 젊은 계집에게 빠지면 다 저런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비록 조강지처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엄연히 현재의 자기 부인이 아닌가…. 이런 때 나이 숫자에 맞추어 흑장미가 꽂힌 꽃바구니에 “나 진정 당신을 사랑하오.” 라는 생일 축하 카드라도 하나 끼워서 보내 주었더라면 이토록 서운하지 않고 감동의 눈시울이 젖을 수도 있었으련만….

참으로 서운했다. 숙경은 준식을 불렀다.
“사실은 오늘이 내 귀 빠진 날이야. 우리 어디 분위기 좋은 곳에나 가서 술이나 한잔하고 올까?”
“아, 예. 그렇습니까? 생신 축하드립니다.”
“아니야. 축하는 무슨.”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널따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변두리 어느 조용한 카페에 가서 고급 와인을 마셨다. 창밖의 건너편 하늘에는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은하수가 하얀 눈송이가 휘날리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가끔 꼬리가 긴 유성이 날아가고 있었으며 저만치 소나무 가지 사이로 어스름한 달빛이 교태어린 몸짓을 하고 있었다.

“준식이! 준식인 인생을 어떻게 생각해?”
“인생 말씀입니까? 글쎄요.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맞아. 다 그런거…. 고생 고생하다가 성공하는 사람. 성공했다 또 실패하는 사람. 그래,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다가 나이 들고 병들면 세상을 떠나는 거구. 그래, 맞아. 참으로 우문현답이었네…. 아, 오늘따라 와인의 맛이 유난히 좋다. 혀끝에 감겨드는 이 와인처럼 인생은 시고 떫고 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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