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작은 나눔이 아름답다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작은 나눔이 아름답다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2.12.26 11:30
  • 호수 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봉사는 거창한 게 아니다

병원 환자에 꽃을 돌린다거나

소액으로 불우 청소년 돕는 등

생활 속 작은 나눔 실천하면

충분히 아름다운 노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아름다운 노년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뉴패션에 따라 외모를 잘 가꾸고, 웰에이징으로 당당한 신노년문화를 향유하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젊은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기회가 닿는 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 등이 떠오른다.  

프랑스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멋있는 프랑스인’의 3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스포츠를 즐길 것, 외국어를 구사할 것, 시민단체 회원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할 것. 마지막 조건은 의외이다. 그런데 이 조건은 18세기 말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의 자유를 세계 최초로 천명한 프랑스 국민다운 발상이다. 

그러나 봉사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지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 같은 거창한 표어 아래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의미있는 봉사가 가능하다. 오히려 그게 더 봉사의 본래 정신에 맞을지 모른다. 아름다운 노년은 아래의 사례처럼 생활 속 작은 나눔을 통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1. 미국의 어느 묘지관리인은 근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윌슨 할머니로부터 몇 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자기 아들의 묘에 싱싱한 꽃을 사서 놓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매달 얼마씩의 돈을 받아 왔다. 그 할머니는 이제 얼마 더 살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었고, 자식의 묘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묘지를 찾아왔다. 너무 허약하고 시름에 차 있던 할머니는 자기가 죽더라도 계속해서 싱싱한 꽃을 사서 묘비 앞에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 관리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마음 한구석엔 늘 딱한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느 교회에서 매주 병원, 고아원, 교도소 등을 방문하는 그룹에 속해 있었는데, 아마 그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은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여기보다는 그가 방문하는 곳에 더 필요할지 모른다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 꽃을 감상하고 냄새도 맡으면서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자기 아들의 무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돌아갔다. 그 관리인은 자기가 괜한 얘기를 해서 할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게 아닌가 하고 후회했다. 그런데 몇 달 뒤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어느 늙은 여성이 묘지를 방문했는데, 얼마 전 마지막으로 아들의 무덤을 찾은 그 윌슨 할머니였다. 이번엔 비교적 건강한 모습에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서 왔다. 

그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꽃에 관해서 한 당신의 말이 맞았어요. 내가 전번에 여기 다녀간 후 돈을 보내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지요. 그날 병원으로 돌아와서 생각하니 당신의 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그래서 난 곧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꽃을 선사하기 시작했지요. 그들이 그 꽃들을 얼마나 즐기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에 기쁨이 일기 시작했어요. 참 이상한 일이지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꽃을 받는다는 게 그들에게도 기쁨을 주었겠지만 그들의 기쁨은 몇 배로 커져서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어요. 의사들은 무엇 때문에 내가 갑자기 건강을 되찾았는지 모르지만 난 그 이유를 알지요.” (“You don’t bring me flowers any more.” 「Chicken Soup for the Soul, 영혼의 치유서」) 

#2. 나의 아내는 오래전 구청 어머니 합창단에서 만나 30년 이상 사귄 다섯 명의 동네 친구 모임이 있다. ‘장미회’라 하는데, 나이 차이가 좀 있어서 언니, 동생 하며 한 달에 한 번씩 모인다. 그런데 이 모임이 특별난 것은 불우 청소년을 돕는 일을 처음부터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식사비를 절약해 그 돈을 모아 사회복지관을 통해 소개받은 청소년에게 매월 얼마씩을 후원한다. 

요즈음은 월 7만 원을 주는 것 같다. 주는 쪽에서는 많은 액수가 아니지만 받는 쪽에서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소개받아 그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후원하고, 끝나면 새로 소개받는 식으로 하여 그동안 모두 5〜6명을 후원했다. 

후원 대상자는 부모가 없어 조부모와 같이 살거나 부모가 있어도 장기출타 혹은 장애 등의 이유로 제대로 양육을 받을 수 없는 결손가정 아이들이거나 소년소녀가장들이다. 처음 시작할 때 후원 약속에 관한 편지 한 장 보내고, 일 년에 한 번 감사 편지를 받는 정도의 관계를 갖고, 실질적인 관리는 사회복지사가 다 한다. 

이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자매 이상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젊은 날 합창단에 같이 다녔다는 동료의식 말고도 불우 청소년을 돕는다는 봉사정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눔이 아름다운 우정의 매개가 된 것이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 모이는 것이 힘들어질 때까지 계속 후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너무 싼 점심만 먹는 것 같아 이 칼럼 글로 원고료가 좀 나오면 내가 한번 점심을 후원해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