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기고] 단풍잎과 배려문화
[백세시대 / 기고] 단풍잎과 배려문화
  • 이기호 명예기자
  • 승인 2023.01.09 11:08
  • 호수 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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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명예기자
이기호 명예기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바닥에 단풍잎이 수북하게 쌓여가던 지난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걸어가던 10대 여학생들이 바닥에 떨어진 잎을 줍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낙엽이 더 예쁘다고 자랑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단풍보다 고운 미소로 가득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말괄량이 초등학생 몇몇이 서로에게 단풍잎을 집어던지며 놀고 있었다. 노오란 은행잎처럼 환한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단풍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유쾌한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 주변에는 가을 손님인 단풍잎이 결코 달갑지 않을 환경미화원이 있었다. 그는 빗자루를 들고 망설이는 듯 보였다. 한시라도 빨리 낙엽을 쓸어 모아야 할 자신의 의무와 아이들의 즐거운 추억을 지켜주고 싶다는 어른의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의 선택은 기다림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끝내면 휴식시간을 더 가질 수 있을 테지만 아이들의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 애먼 바닥만 쓰는 척 했다.

또 한편에는 아파트 경비원도 단지의 통로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의무를 지키기 위해 비질을 하고 있었다. 역시 아이들의 추억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아이들도 마냥 놀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낙엽을 미화원과 경비원이 비질을 하는 방향으로 절대 던지지 않았고 얼마 후 자리를 떠났다. 그제야 미화원과 경비원은 낙엽을 온전히 치우며 도로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떨어진 단풍잎을 대하는 방식은 모두 달랐지만 거기 있던 이들은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거나 일부러 방해하지 않았다. 자신의 권리를 챙기고 의무를 다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그 모습이 단풍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계묘년 새해에는 이러한 ‘단풍사회학’을 통해 드러난 배려의 문화가 우리 사회를 물들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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