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내던지고 노인무료급식소 운영
교직 내던지고 노인무료급식소 운영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06.25 11:23
  • 호수 1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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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망원동 '하심정' 김희종 대표

 

'하심정' 김희종 대표
서울 마포구 망원동 노인무료급식소 ‘하심정’(下心亭)의 김희종(49) 대표는 지역노인들을 비롯해 한 끼 식사를 원하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매일 300인분의 국수를 삶는다. 그가 무료급식소를 운영한지 벌써 3년이 훌쩍 넘었다.

김희종 대표는 서울 신림동의 성보고교 과학교사였다. 평소 명상과 수련에 관심을 갖고 평온을 구하던 그는 김원수 교수가 주축이 된 ‘바른법연구원’에서 틈틈이 사람들을 만나 명상과 수련, 봉사활동을 함께 하곤 했다.

그러다가 22년을 근무한 교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하심정 무료급식에 뛰어든 것이 지난 해 2월.

당시 고3이었던 아들과 아내는 김 대표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한다고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봉사를 하고 싶으면, 자신의 직업을 유지한 채 과외적인 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안정적인 직업 1순위로 꼽는 교직을 그만두고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일터를 버렸으니 누가 온전한 사람이라고 보았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행동이 이기적인 것이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가족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냐는 것.

그러나 김 대표는 자신의 손에 쥔 떡을 놓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손에 쥘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떡 대신 그토록 갈구하던 ‘평온’이 쥐어졌다. 진심을 다하면 그 진심에는 분명히 반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책이 아닌 삶에서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결국 가족의 마음도 돌아섰다.

지금은 부인도 무료급식에 동참, 함께 급식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봉사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봉사의 개념을 떠나 있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무료급식을 운영하다보니 몸이 힘든 것은 그저 즐거운 일을 행하러 가는 준비일 뿐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준비한 식사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국수 한 그릇을 위해 한 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한 끼를 ‘때우려’ 급식소를 찾는 어르신은 많지 않다. 수백명이 넘는 무료급식 대상자들에게 일일이 서운하지 않게 대접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음식을 대접받는 사람은 자신을 수백명 중 한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수 한 그릇에 한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는 생각으로 급식봉사를 했기 때문일까. 입소문은 금방 퍼졌다.

'하심정' 김희종 대표
국수 한 그릇이라도 매일같이 밀려드는 재정적 부담을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질 수는 없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봉사라는 것이 삶을 위협할 만한 상황이 된다면 결코 오래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풂’이란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자립적으로 운영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바른법연구원 김원수 원장은 자신의 자택 마당을 급식소로 개방했고, 2층 단독주택 중 1층까지 내놓았다.

그 터전에서 김 대표와 2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급식소 운영을 위한 식당을 열었다. 한 끼에 3000원이라는 소박한 밥상은 전통사찰음식이자 자연에 충실한 음식들로, 돈을 내밀기가 미안해지는 밥상이다.

어떤 이들은 무료급식을 받으러 와서 돈을 놓고 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음식을 먹고 음식값의 몇 배에 달하는 돈을 놓고 가기도 했다. 아침에 문을 열 때면 고춧가루나 쌀포대 등이 놓여있는 경우도 흔했다. 흔히 말하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은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닐까.

김 대표와 2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의 쏟아낸 정성은 이제 지역 어르신들에게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망원동 일대의 어르신들은 당장 삶이 고달파도 하심정에 가면 정성이 듬뿍 담긴 국수를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삶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걷어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하심정 02-337-1632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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