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친화건축, 웰빙을 넘어 힐링으로 진화
고령친화건축, 웰빙을 넘어 힐링으로 진화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07.09 10:17
  • 호수 17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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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신체활동 고려한 세심한 설계가 관건

최근 전문화된 노인주거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웰빙(참살이)’ 개념을 넘어 ‘힐링(치료)’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편리성을 따지던 주거공간은 이제 주택의 입지와 자재, 생활습관을 교정해 주는 동선에 대한 연구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노년층을 겨냥한 이른바 전원형 ‘실버타운’이 노인을 배려한 구조를 비롯해 은행, 병원 등 생활편의시설 등이 갖춰지지 않아 최근 시들해지는 추세도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노인요양시설 등에서는 노인주거공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건축물의 구조에 따라 다양한 질환에 노출돼 있는 노인들의 상태가 호전되기도, 악화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부모를 모시는 개인뿐 아니라 마을회관, 경로당을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경우에도 고령친화적인 구조를 채택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고령친화디자인’이란 건축물의 설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고령자의 특성을 감안해 콘센트의 위치 조절, 계단의 난간 설치 등 소품에도 적용된다. 작은 배려가 어르신들에게 주는 편리함은 상상 이상이다.

고령친화건축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제주대 건축학부 김태일 교수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건강하고 자립생활이 가능한 재가 고령자를 위한 거주 환경 조성이 매우 중요해졌다”며 “쾌적하고 노인의 특성에 맞는 주거공간은 안전사고와 생활의 습관에서 오는 만성질환의 위험을 줄일 수 있어, 사회적으로 의료비용을 크게 경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 노인을 위한 거실 디자인. 가구와 마루의 색은 가능한 색채대비가 확실한 것으로 해야 모서리 등에 부딪치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 거실은 밝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노인은 실내에서 거주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노인거주공간은 가능한 쾌적한 실내환경과 조망권이 좋아야 한다. 그 중 거실은 노인이 주로 취미와 담소를 즐기는 공간이자 조용히 독서와 음악,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다용도의 주거환경을 이루게 된다.

특히 유리창을 통해 채광과 조망을 즐기게 되는데, 가능한 두 면 이상에서 채광이 되도록 한다. 자연채광은 신체 및 정신건강에 중요한 요소이므로 거실은 맑게 갠 낮 시간의 경우 30% 이상 해가 들도록 설계하며, 북향은 피한다. 또한 거실 창문은 작동하기 쉬운 것으로 시공하고, 개폐장치는 높이 150cm 정도로 한다.

▶주방, 조명 밝게 하고 작업공간 넓어야
주방을 잘 활용하는 노인은 치매 발병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일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편리한 공간배치와 가구설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선은 단순하고 최대한 짧게 계획한다. 바닥재는 청소가 용이하고 미끄러움을 방지할 수 있는 자재를 선택해야 한다.

노인은 신체 치수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그에 따라 작업영역이 축소되기 마련이다. 주방가구 및 공간의 치수 역시 노인의 신체특성을 고려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돼야 한다. 수납은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위치가 적합하고, 너무 낮거나 높은 선반은 허리를 구부려야 하므로 300mm~1500mm의 안에서 작업범위가 이뤄지게 한다.

또한 몸이 불편한 노인일 경우 앉아서 쉽게 작업할 수 있도록 휠체어 사용에 따른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 노인을 위한 욕실디자인. 불의의 사고로 쓰러진 노인의 몸이 문을 막고 있을 수 있으므로 문은 미닫이나 밖에서 열 수 있는 구조로 설치하는 것이 좋다.

▶욕실, 미끄럼 사고 등 대비해야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매년 발표하는 ‘가정내 노인 안전사고 실태’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노인의 경우 욕실·화장실에서 사고발생이 가장 많다. 욕실은 자주 사용하는 공간이고, 다른 공간에 비해 좁은 반면 세면대, 변기, 욕조 등 많은 기기와 소품들을 쓰는 곳이다.

▲ 다리 힘이 약한 노인이 일어서다가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손잡이를 설치한 좌변기.
특히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미끄럼 사고가 많다. 노인이 주거하는 욕실의 경우 미래에 휠체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설계하는 것이 좋다. 이미 몸이 불편해진 다음에 욕실을 대대적으로 개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지나친 안전용품들을 설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노인에게 무력함을 느끼게 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 줄 수 있다. 욕실의 출입문은 노인이 사고를 당해 문을 막을 경우를 대비해 밖으로 열리게 하거나 미닫이문을 설치한다.

변기가 놓인 벽에 사용자의 신체에 맞춰 알맞은 안전손잡이를 설치하면, 앉고 일어설 때 몸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동세정이 가능한 비데를 이용하면 더욱 편리하다.

바닥은 필수적으로 미끄럼 방지 타일로 시공한다. 그밖에 출입경계선, 욕조 측면바닥 등 위험지역에 미끄럼 방지 테이프나, 스프레이 등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조명기기의 스위치는 욕실 입구 바깥쪽에 놓이도록 하고 자동센서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문손잡이와 스위치를 수평으로 놓이게 달아 주면 편리하다.

 

▲ 노인들은 혼자 힘으로 욕조의 턱을 넘어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문이 설치된 욕조는 물이차면 수압으로 인해 물이 새지 않는다.

▶입식구조의 침실과 노인신체 고려한 콘센트 설계
침실은 앉고 일어서는데 큰 동작이 필요한 좌식보다는 입식 구조를 택하는 것이 좋다. 창은 누워서도 전망을 볼 수 있게 창틀을 최대한 낮게 한다. 이때 무엇보다 개인만의 공간으로 독립성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조명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데, 눈부심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되도록 자연광을 이용한다. 전기 콘센트는 일반적인 위치보다 10cm 정도 높은 곳에 설치하는 것이 좋다. 노인들은 콘센트를 잡아 뺄 때 쉽게 몸을 굽힐 수 없기 때문이다.

침실에 사용되는 가구는 모서리 부분에 다른 색이나 무늬를 넣어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부주의로 가구에 부딪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청각의 둔화로 텔레비전 볼륨을 높여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침실 벽이 다른 방과 맞닿지 않도록 한다.

급하게 전화를 받기 위해 일어나다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전화기를 침대 가까운 곳에 두는 것도 좋다.

▲ 현관 입구의 모습. 가능하면 단차를 줄이고, 난간에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난간 하나도 노인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현관 앞에는 의자를 놓아두는 것이 좋다.
▶낙상방지를 위한 복도와 계단
낙상에 대한 두려움이 항시 존재하는 계단과 경사로, 복도 등에는 손잡이와 밝은 조명을 설치한다. 무엇보다 현관과 복도, 계단간의 접근성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현관에는 간이의자를 둬 갑작스런 어지럼증 등 필요한 경우 앉아 쉬도록 한다.

현관과 계단, 복도는 욕실에 이어 주거내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공간. 따라서 외부에서 현관을 거쳐 실내 공간으로의 진입할 때까지의 계단은 단차를 최대한 줄여 설계하는 것이 좋다.

현관과 각 방의 문은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폭을 고려해 90cm 이상 설치하고 턱이나 문지방을 없애준다.
일반적으로 계단을 따라 놓인 난간은 양쪽에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내려오는 방향의 오른쪽에 견고한 난간을 설치한다.

계단과 복도에 설치하는 조명은 발을 비출 수 있는 보조조명 등을 이용해 자신의 그림자로 계단이 가리는 것을 방지하면 좋다.

▶고령자 보살핌의 3원칙

▷ 익숙한 환경의 연속성 보장
유럽의 고령자 시설은 노인이 시설에 입소할 때 과거의 생활과 단절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과거 살던 집에서 쓰던 가구 및 집기류의 반입을 허용하고, 살던 집의 벽지색상과 조명기구 등을 조사해 시설 내 거주실에 같은 패턴 및 질감의 벽지로 교체해 주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잔존 능력의 발굴 및 활용
고령자의 잔존 능력을 충분히 발휘,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보살피는 등 서비스의 강도를 조절하는 사례가 있다. 고령자에게 단순히 편안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설에서 무의미한 노후를 보내지 않도록 가능한 한 자립생활을 유도한다.

▷자기결정
보살핌의 정도는 고령자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고령자 거주시설에서 아침식사를 무엇으로 몇 시에 먹을 것인지 자신의 생활리듬에 맞춰 정하고, 보살피는 사람들은 이러한 요구사항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도움말 : 월간 ‘전원속의 내집’, 제주대 건축학부 김태일 교수
함문식 기자 moo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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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원 2009-07-12 06:58:36
함문식 기자님,
"노인주거공간이 힐링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라는 기사를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우리 경로당도 출입구 계단과 문턱을 없애는 등 리모델링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기사를 참고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