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비로운 비경의 하롱베이… “호치민의 통일위업 아직도 생생히”
[기고] 신비로운 비경의 하롱베이… “호치민의 통일위업 아직도 생생히”
  • 관리자
  • 승인 2006.08.2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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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홍하) 델타와 하롱베이 여행기
류영수 부천시 오정구지회장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의 한낮 기온은 35도였다. 인천 공항 낮기온이 15도였으니, 무려 20도가 높아 가슴에서 열이 차오르는 더위다. 공항에서 40분 거리의 하노이 시까지 버스가 달렸다. 도로변에는 고개를 쳐든 짙은 녹색의 벼가 싱싱하게 물결 치고 있었다.

 

하노이 시가에 들어오니 4시30분경인데 거리에 오토바이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개미떼가 출현한 듯했다. 오토바이 떼가 시내 중심가 4차선을 완전히 점령했다. 차라고는 드문드문 보이는 트럭뿐이었다.

 

이곳에서는 오토바이가 전 시민의 절대 교통수단이며 남녀노소 없이 타고 다녔다. 출퇴근 시간에는 통제 불능의 상황이지만 사고발생은 거의 없다고 한다. 말끔한 아오자이 차림의 젊은 여인들이 오토바이에 사뿐히 앉아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모습이 아주 예뻐 보였다.

 

하노이에서 처음 도착한 곳은 수상 인형 극장이었다. 이 연극은 수중에서 조련사가 조작하는 인형을 물 위에서 활동하는 각종 모양으로 연출해 내는 것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특유의 손재주를 여실히 볼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그동안에 소나기가 쏟아져 도로가 온통 물에 잠겨 있었다.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길을 건넜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갑자기 비가 오는 일은 이곳에서는 흔히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탕로이 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쿠바의 카스트로가 지어서 호치민에게 선물한 곳이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이며 호수와 숲으로 둘러 쌓여 지역 풍경이 아름다운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그 도시의 중앙에 호치민의 영묘가 있다. 호치민은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가지 과업을 이룩해낸 위대한 지도자로 온 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어 호치민의 영묘를 보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만 했다. 우리도 1시간을 기다려 입장 할 수 있었다.

 

실내에 꾸며놓은 무덤 속에는 호치민의 시신이 생전 모습 그대로 자는 듯 누워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묘소를 나와 그분의 생전에 생활하던 숙소를 돌아봤다. 국부(國父)의 예우를 받던 통치자의 거처로는 너무도 초라했다. 침실과 거실을 모두 합쳐도 10평 정도의 공간이었다.

 

호치민. 그분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외세(外勢)와 싸워 프랑스의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했고, 분단된 남북을 통일했다.

 

탐콕(닌빈)의 삼판

 

하노이에서 90km 거리에 있는 닌빈에 갔다. 한국 같으면 1시간 정도의 거리지만 2시간30분이 걸렸다. 슬쩍 속도계를 훔쳐보니 시속 40km를 달리고 있었다. 도로에는 오고 가는 차량도 별로 없건만 ‘참으로 아까운 시간 낭비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 양편에는 넓은 들판에 초록색 논밭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베트남은 2모작을 하며 그래서 쌀 수출이 세계 2위라고 한다. 이곳에서도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는데 논 가운데 묘지가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는 가족 납골당도 포함 돼 있다고 한다.

 

탐콕의 선착장은 분주했다. 사공 두명에 승객 두명씩 태운 ‘삼판’이라고 부르는 나룻배를 타고 물줄기를 따라 꼬불꼬불 이어지는 운하를 왕복하는 나룻배 유람 길이있다. 이 유람길을 ‘탐콕’이라 부르며 3km의 거리인데 주변의 산세가 참 아름다웠다. 높이 100여m 정도의 돌산들이 물길 양편에 즐비하게 이어갔다.

 

미끄러지듯 물살을 가르는 삼판은 동굴 세곳을 머리가 달랑 말랑한 높이로 지나 갔다. 아슬아슬하고도 흥미로웠다. 물길은 담수로이기 때문에 배가 요동이 없어 편안했다.

 

하롱베이

 

싸이곤 하롱베이 호텔 11층에서 내다본 아침 바다가 눈부셨다. 그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돋이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앞이 탁 트인 바다 위로 갖가지 모양의 섬들이 마치 장기 알을 깔아 놓은 듯 깔려 있었다. 그 수가 3,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곳은 199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보호되고 있다. 아침 일찍 선착장에 도착해 유람선에 올랐다.

 

유람선 1층은 테이블과 안락한 의자가 놓여있고 2층은 전망대로 돼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이곳의 섬들은 모두 돌산으로 돼 있었으나, 푸른 숲들이 돌 사이로 솟아올라 산을 덮고 있었다. 섬과 섬 사이를 유람선이 돌면서 낚아 올린 생선과 문어 등으로 회를 떠서 점심을 먹는 것도 별미였다.

 

여기 저기 섬에는 천연동굴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선궁 동굴의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매달린 종유석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수영을 할 수 있는 모래사장을 갖춘 섬에는 서양인들의 비키니 차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섬 주변에는 배에서 생활하는 선상 주택도 있었다. 오래도록 추억이 될 하롱베이를 아쉽게 작별하고, 다시 하노이를 향해 거북이 질주를 했다.

 

언제 보아도 광활한 들판에 물결을 이룬 검푸른 벼 잎은 여전히 싱그러웠다. 그간 베트남 수도 하노이와 홍하 델타를 돌아보면서 낮 기온 37도의 더위를 이겨내야 했고 오후 5, 6시경에는 어김없이 먹구름이 몰려와서 비를 뿌리는 것도 보았다.

 

호치민 영묘에서는 베트남 국민들의 애절한 흠모의 정이 넘치는 것을 보았다. 하노이 시내에서는 오토바이 홍수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고 노상 이발소도 구경 거리였다.

 

교외로 나가면 초록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한 벼들의 물결에 생동감이 느껴졌다. 탕콕에서는 삼판에 몸을 담고 경치 좋은 산세를 보며 수상 동굴을 건너던 일이 즐거웠다. 하롱베이에서는 바다위에 떠있는 갖가지 모양의 섬들을 보며 그 신비로운 비경에 그저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또 한번 내가 너무 세상을 모르고 살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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