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누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하겠는가”
[백세시대 / 세상읽기] “누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하겠는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6.05 11:17
  • 호수 8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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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자유에는 책임과 절제가 따른다. 자유를 빙자해 질서를 해치고 남을 괴롭히는 등의 오만방자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같은 의미로 ‘공정’(公正)이란 말에는 양심과 배려가 전제 된다. 

며칠 전 세상을 뜬 언론인·작가인 최일남(1932~2023년)은 일상의 공정을 실천한 인물이다. 한 후배작가는 “2000년대 초반 선배님은 한 언론 관련기관에서 비상근이사로 일하신 적이 있었다. 마침 그 기관 간부에 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말이 ‘최 선생님은 회의가 끝난 후 댁까지 승용차로 모시겠다’고 해도 ‘지하철 타고 가면 된다’며 끝끝내 사양하셨다’고 했다”고 고인의 깨끗한 삶을 소개했다.

공정이 무엇인가.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그런 즉 자기 편의를 위해 공용의 회사 자산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공평하고 올바른 것이다. 고인이 보여준 행동은 양심과 배려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정이란 게 국가, 사회 등 거시적인  체제에서만의 형식논리가 아니다. 

우리는 과연 공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국민의 반 이상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서울 시민의 60.9%가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인 15개국 대도시 중 가장 높았다. 반면 뉴욕, 도쿄, 런던, 타이베이 등은 20%대에 머물렀다. 서울의 뒤를 이어 공정하지 않다는 도시가 튀르키예 앙카라였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집단이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 사법부 등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 청와대 비리를 폭로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최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김 전 구청장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시절인 2018년 말 문재인 청와대의 비위 의혹 30여 건을 폭로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 희대의 농간을 부리고 있다”며 그를 고발했다. 하지만 그가 폭로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유재수 전 부산 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은 사실로 인정돼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이 났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청와대 인사비서관은 유죄가 확정됐고, 조국 민정수석과 백원우 비서관도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개울물을 흐리고, 농간을 부린 것은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만약 김 전 구청장의 폭로가 없었다면 이런 비리는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 전 구청장에 대해 공무상 비밀 누설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하급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부 보고 절차와 미확인 사실을 공개했고, 국민권익위나 수사 기관에 신고·고발하기에 앞서 언론에 폭로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에 반해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전국을 무대로 자기 책을 홍보하며 “딸 때문에 다른 사람 떨어진 적 없다”는 등의 후한무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정하지 않은 사회의 극단적인 예이다.

또 다른 예는 국회의원의 해외출장이다. 국회 기재위원장과 간사 등 기재위 소속 여야 의원 5명이 지난 4월 스페인·프랑스·독일에 10일간 출장을 다녀오면서 국민세금 9000만원을 썼다. 한 사람 당 1800만원이 든 셈이다. 회사원이 같은 코스를 다녀오면 300만원이면 족하다. 무려 6배나 공정하지 않다는 의미다. 앞으로는 국회의원도 회사 출장비 범위 내에서 다녀와야 할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극명한 사례는 선관위의 자녀 채용 특혜 의혹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의 자녀가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아버지의 동료’였다고 한다. 양심과 배려가 없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탈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저출생·고령화로 한국경제의 성장 엔진이 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백 조원을 쏟아 붓고도 여성 한 명이 평생 한 아이도 낳지 않는다(합계 출산율 0.78)는 저출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공정하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고위 관료와 국회의원들이 끊임없이 비리를 저지르고 특권을 향유하는 이 불공정한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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