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회관 마련, 노인대학원 합창단 조직, 1‧3세대 동요대회 준비
연합회 사상 42년 만에 여성 회장… ‘여자라서’란 말 안 들으려 노력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노인들이 가장 기뻐하는 건 자식들하고 같이 살면서 옛날을 추억하는 것이다.”
지난 7월 22일, 김인순(82) 대한노인회 제주연합회장이 1·3세대 동요대회를 추진하고, 노인대학원 합창단을 조직하게 된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제주도민의 특성 중 하나가 강한 독립성이다. 함께 살아도 부모는 안쪽에, 자식은 바깥쪽에 각각 따로 집을 짓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 연합회장은 “부모도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식도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 게 제주도 문화 중 하나인 터라 다른 곳보다 1·3세대 단절이 크다”며 “잘 살았던 못살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가족 간의 사랑과 화목을 되살리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 연합회장은 또 “제주가 전국에서 가장 여성 취업률이 높다”며 “80세 어르신도 감귤 수확 철에 감귤 따러 다닌다”고도 말했다.
제주도 전체 인구는 66만6600여명, 노인인구는 12만6900여명이다. 제주연합회 산하에 제주시지회와 서귀포시지회 등 두 개 노인회를 두었다. 전체 경로당 수가 473개 소, 회원은 5만여명이다.
김인순 연합회장은 전남대 의대 부속 간호학교를 나와 제주도 내 제1호 양호교사로 18년간 근무했다. 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 한국어 문학과 객원교수, 대한간호사협회 제주지회장, 정우흄관 대표이사,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제주지회 이사 등을 지냈다. 대한노인회 제주연합회 부회장을 거쳐 지난 2024년 3월에 16대 제주연합회장에 취임해 현재에 이르렀다. ‘김만덕상’, 대통령 표창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사무실 공간이 축소된 것 같다.
“혼자 쓰기에는 넓어 줄이고, 그만큼 직원 사무실 공간을 넓혔다.”
-연합회장 해보시니 어떤가.
“개인적으로 집에 있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가. 집에 있으면 누가 인정해주나. 피곤할 때도 있지만 일을 찾아서 하면 얼마든지 있다. 제주 4·3 항쟁 때 지금의 노인들이 가장 큰 희생을 당했음에도 노인회장을 부르지 않는다. 행사장에 노인회장을 초청하지 않으면 저는 ‘왜 부르지 않느냐’고 따지고 든다. 외부 회의 자리에도 100% 참석한다.”
-취임 1년이 지났다. 그간 어떤 일을 하셨는지.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이 노인회관 확보이다. 40년 된 현재의 회관이 비가 오면 샐 정도로 낡았으나 문화재 구역이라 손댈 엄두가 안 났다. 오자마자 이 문제 해결에 매달려 결실을 보았다. 300억원에 달하는 예산 지원으로 버스터미널 인근의 2100평 부지, 4층 건물에 2027년 6월 입주 예정이다. 어르신들 접근성도 좋고, 주차 공간도 여유 있는 제주의 명당이다. 어떤 단체보다 더 좋은 단체로 도약할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단기간에 공약을 실현했다.
“노인회관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위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뛴 결과이다. 오늘 아침에도 이 사업과 관련해 도 복지국장을 만났다.”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사회생활 과정에서 쌓은 인맥, 여성이란 장점 등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는 분석이다. 김 회장은 “같은 남성보다는 여자가 부탁하면 거절 못하는 측면이 있지 않느냐”며 웃었다.
-노인대학원 합창단을 조직했다고.
“제주의 노인회마다 노인대학원을 운영한다. 연합회는 특화된 대학원을 만들려고 도의 노인복지기금으로 합창단을 창단했다. 30명 모집에 47명이 지원했는데 그중에 90세 여성 어르신도 있다.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별 차이가 없어 모두 합격시켰다.”
-반응은 어떤가.
“전문적인 지휘자, 반주자를 모시고 일주일에 한 번 회관 강당에서 연습한다. 합창단 공연에 대한 반응이 아주 뜨겁다. 향교에서의 공연 때 한 청중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어떤 노래를 불렀기에.
“트로트 문화가 대세인 요즘 세태와 우리는 조금 다르게 가자는 뜻에서 어렸을 때의 동심을 자극할 수 있는 동요를 선택했다.”
-노인 일자리 확충을 강조했다.
“노인 일자리를 150여개 늘렸지만 부족한 면이 있다. 와서 보고 대한노인회가 노인에 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 단체가 돼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니어클럽은 60세 이상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반면 대한노인회는 65세 이상이다. 일자리를 뺏겼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할 일을 못한다는 얘기다. 뭐든지 일을 많이 해야 큰소리도 칠 수 있다. 노인 권리만 주장할 게 아니라 일도 하면서 요구할 걸 요구해야 한다.”
제주연합회는 올해 회계 등을 돕는 경로당 행정 도우미(600명)를 비롯해 시니어 인턴십 등에 1000여명이 참여한다.
-제주연합회의 현안이라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고, 직원 호봉 단일화가 시급하다. 그게 돼야만 인사이동이 가능해지고, 업무 능률도 향상되고, 조직이 활성화된다. 중앙회가 공무원 호봉표 같은 걸 만들어 주면 우리가 지방 정부에 인건비를 요청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경로당 점심 식사 실태는.
“제주도의 특이 사항 중 하나가 마을 자산이 많다는 점이다. 그 수익으로 점심을 먹는 경로당도 꽤 있다. 대부분 경로당이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등 자유롭게 하고 있다.”
-중앙회 회원 배가 정책에 어떻게 호응하는지.
“직원들이 경로당에 나갈 때마다 회원 확충을 강조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는 한 일터로 나가는 습성이 있다. 경로당에 나가 쉬려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 사회단체장을 대상으로 회원 모집을 권유하려고 한다.”
-제주도민을 위한 노인복지정책은.
“제가 ‘제주형 건강지킴이 시범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받아 공청회에서 노인 실정을 대변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이 한 팀이 돼 거주지 가까이에서 질병 예방부터 치료, 관리까지 통합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이 핵심이다. 여기에 로터리, 라이온스, JC 등 사회 봉사단체가 협업하면 제주의 노인복지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중앙회가 추진하는 재가 임종과 연계해 추진하는 방안도 있다.”
-모스크바 국립대 겸임교수 경력이 있다.
“남편도 교장이고 나머지 가족도 대부분 교사 출신이다. 경력을 다 합치면 177년이 된다. 제가 김대중 정부 때 신지식인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한국과 러시아 간 왕래가 활발했던 당시에 신지식인 한 분의 연결로 모스크바 대학생들에게 한국어 강의를 몇 차례 했다. 구소련 체제 붕괴 이후론 강단에 서지 않았다.”
-나눔과 도전정신을 계승하는 여성들에게 수여하는 ‘김만덕상’도 수상했다.
“다양한 사회 활동을 인정해준 것 같다. 모스크바 겸임교수, (사업할 때)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통한 일자리 창출, 국내외 단체 지원 등을 했다.”
김 회장은 제주대학교 간호대학 장학금으로 총 4000만원의 발전기금을 내놓기도 했다.
-노인회 행사에서 늘 당부하는 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그리고 뭔가를 해야 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김인순 제주연합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연합회 초대 회장이 여성으로 42년 만에 다시 (여성이) 맡았다. ‘여자라서 못했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남녀 혼성 비율이 바람직한 사회란 측면에서 노인회도 여성 임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