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에 3선, 지팡이 안 짚고 목소리도 카랑카랑…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각종 스포츠‧프로그램실 갖춘 ‘실버복합문화센터’ 내년 6월 완공… “보람”
[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김철용 대한노인회 부산 서구지회장은 91세로, 지회장 중에선 최고령층에 속한다. 김 지회장은 지난 8월에 치른 서구지회장 선거에 당선돼 임기를 마칠 때면 95세가 된다.
김 지회장에게 “존경받는 노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내 위치를 내가 지켜야 한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집에서는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밖에 나와선 86개 경로당을 아우르는 회장의 모습으로”라며 “경로당에서 나이가 많다고 나이 적은 회원에게 방 쓸고 설거지하라고 지시하지 말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부산 서구 인구는 10만2500여명, 노인인구는 3만여명이다. 부산 서구지회에는 86개 경로당, 회원 2000여명이 있다.
김철용 서구지회장은 한국전력·해태제과·조흥은행 등에서 근무했다. 부산 서구 구덕파출소 명예회장, 법무부 보호관찰관 등을 지냈다. 대한노인회 꽃마을경로당 회장, 부산연합회 감사·부회장을 역임했다. 제13·14대 부산 서구지회장에 이어 지난 8월 7일에 실시한 제15대 부산 서구지회장 선거에서 단독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대통령 표창, 자랑스러운 구민상 등을 수상했다. 부산지회장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부산 서구는 어떤 도시인가.
“과거에는 부산의 부촌이자 ‘원도심’이었다. 지금은 자식들 다 잘 가르쳐 외지로 떠나보내고 부모들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그전처럼 서구 주민들이 건강하고 살기 좋은 부산의 대표도시로 만드는 것이 제 바람이다.”
-91세에 지회장 3선을 달성했다. 더구나 단독 후보였다.
“원칙대로 살아와 주위에서 나에 대한 흠집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지를 못한 것 같다(웃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자기 몸을 자기가 잘 관리하면 된다. 아직 지팡이도 짚지 않고, 목소리도 쉬지 않았다.”
-지난 8년간 가장 큰 성과라면.
“보다시피 노인회관이 산 중턱에 겨우 들어앉아 있다. 지회장 사무실도 없이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직원들과 함께 지낸다. 번듯한 노인회관을 마련하기 위해 오랜 시간 애써온 결과, 곧 서구의 중심지에 새 건물을 짓고 입주한다. 시간 나면 공사 현장도 가보고 한다. 임기 중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하다.”
부산 서구지회는 40억원을 들여 지회 설립 이래 숙원사업이던 ‘실버복합문화센터’(가칭)를 2026년 6월에 준공한다. 노인종합지원센터를 비롯 실버프로그램실, 실버스포츠센터, 다목적홀, 야외카페 등이 들어선다.
-예산을 따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강원도 출생이지만 서구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 나를 잘 안다. 부산시장을 비롯해 구청장, 구 의장 모두가 후배들인 셈이다. 누구나 나이 들면 늙는 법, 노인에게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또 다른 성과라면.
“경로당도 10곳 정도 늘었고, 장기·바둑 등 민속·한궁 경기를 비롯해 치매 예방 게임 등 어르신들이 융화·단결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노인 일자리도 많이 확보해 노인들에게 일 할 기회를 제공했다.”
서구지회는 서구청과 함께 효행 우수자와 모범경로당을 발굴·시상하기도 했다. 예의를 잘 지키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경로당 회원을 효행 우수자로, 단합이 잘 되는 경로당을 모범경로당으로 선정해 시상한 것이다.
인터뷰 자리에 배석한 안혜정 사무국장은 “특히 지회장님께서 사비로 혈당 측정기를 구입해 경로당에 배급하는 등 희생적으로 지회를 운영하신다”고 말했다.
-경로당 방문도 하는지.
“한 달에 평균 여섯 곳을 돌면서 불편한 점이나 필요한 비품 등을 확인한다. 공간이 좁아 입식으로 바꾸지 못하는 일부 경로당 문제를 해결 중이다.”
-노인 일자리는.
“경로당 청소 등에 176명이 참여하고 있다.”
-경로당 회원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 늘 움직이시라고 말씀드린다. 어차피 관에 들어가면 누워 있을 테니까. 길 가다 쓰레기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줍다 보면 허리를 움직이게 돼 건강에 도움이 된다.”
-회원 배가 운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500명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일부 구립경로당은 더 이상 회원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원을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 중이다. 가령 회원이 많아진 경로당에 지회장이 특별상(사비)을 주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
-재가 임종에 대해선.
“과거엔 노인이 아프다면 머리에 수건을 적셔 얹어주기도 했으나 요즘은 요양원에 보내려고 한다. 환자보다 요양원이 더 많이 생길 정도다. 재가 임종은 좋은 것이 분명하지만 핵가족 상황에선 시행에 앞서 해결할 일이 많다고 본다.”
-중앙회장의 유엔(UN)데이 공휴일 재지정에 대해선.
“6·25전쟁 때 중학교 3학년이었다. 군번도 받지 못한 상태로 수색 중대에 배치돼 대관령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중 손에 쥐고 있던 수류탄이 터지는 바람에 손가락이 다 잘려 나가는 중상을 입고 후방으로 이송됐다. 전 세계 16개 국가의 젊은이들이 무고한 희생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일을 기억하고 후손에게 전하는 역할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공산화가 됐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마 나보다 일본을 많이 여행한 이가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 일본의 지하수 개발을 위한 지층 탐사단의 통역을 맡아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원전 사고로 유명한 후쿠시마도 당시 갔었다.”
-건강 비결은.
“당뇨, 혈압 정상이고 눈도 잘 보인다. 부모님이 87세, 90세에 각각 돌아가셨다. 많이 걷고,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잠을 잘 잔다. 낮에도 틈만 나면 잠깐씩 눈을 붙인다.”
-요즘 노인공경이 실종된 것 같은데.
“젊은 세대가 부모를 모실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어디서 태어났는가, 자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키운 것을 잊지 말고 그들도 자식들에게 똑같이 해야 한다.”
김철용 서구지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 복합문화센터에서 노인대학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노인들이 블루스·룸바·탱고 등 춤도 추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센터 완공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