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국감 유감(遺憾)”

[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국정감사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하다. 많은 국민이 국감을 외면한다. 시정잡배들보다 더 저질스럽게 싸우는 국회의원들의 모양새가 흉해서다. 영국·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선 국감이 없다. 평상시에 잘하고 있는데 구태여 날짜를 잡아서 따로 할 필요가 없어서이다. 

국감의 원래 의미가 ‘입법부의 감시로 국정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라지만 우리처럼 특별한 기간을 정해 공무원, 기업인, 민간인 등을 대거 불러내 보여주기식으로 따지고 질책하는 나라는 드문 것으로 안다.

국감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들면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은 것 같다. 우선 국감을 준비하는 행정부와 공공기관, 관련 민간업계가 시간·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이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8월 하순부터는 국감 준비에 들어간다. 국감에 제출할 자료를 만들다 보면 9월 한 달은 그냥 지나간다. 10월의 국감 기간에는 직접 출석·답변하는 관계로 해당 공무원은 물론이고 관련 공무원들도 일손을 놓은 채 대기 상태에 놓인다. 국감을 마친 11월에야 비로소 예산 심의에 착수하니 과연 그 심의가 제대로 될까 우려된다.

다른 피감 기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회가 피감 기관에 요구하는 자료 건수가 20만 건(2023년)이 넘는다. 이 많은 자료를 밤을 새워가며 준비해 제출하지만 정작 이를 요구한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다 정독할 리가 만무하다.

공무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간은 더욱 딱하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는 모르겠으나 출석을 요구받은 수백 명의 민간인 중에 과연 정말 필요해서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번 국감에도 160여 명의 기업인이 출석 대상이 됐다. 기업인 외에 유명인들이 불려가기도 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국감에 소환됐던 야구선수 선동렬 감독은 “내 생애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날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국감의 부작용은 이뿐이 아니다. 국회의원끼리 사소한 일로 감정싸움을 일삼고, 거짓 변명을 늘어놓거나, 국감장을 개인 홍보나 사적 분풀이 장으로 만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장에서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과 바로 옆에 앉은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고성을 주고받는 말다툼을 벌이다 위원장의 제재를 받고 퇴장당했다.

최 의원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으로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선권 밖이었으나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비례의원직을 승계했다. 그는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국감을 희화화하는 장본인이 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출석한 국감에서 조 대법원장의 얼굴을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 초상화와 합성한 사진과 ‘조요토미 희대요시’라고 적은 팻말을 들어 보여 사법부를 우롱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 의원은 또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에게 “(김건희 여사 모친) 최은순 씨의 내연남 김충식 씨를 아느냐”며 “김씨가 새로 만나는 내연녀를 나 의원 언니가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법원장이 “나 의원은 언니가 없다”고 답변하자 다시 “사촌 언니가 있느냐”면서 질의를 멈추지 않았다.

코미디 수준의 장면을 보여준 의원도 있다. 국감 기간 중 국회에서 딸을 결혼시킨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청첩장에 카드 결제 링크까지 달았다가 삭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 위원장은 야당 의원의 비판이 쏟아지자 "문과 출신인 제가 국감 준비 때문에 양자 역학을 공부하느라 잠을 못 잘 지경이었다"며 "신경을 못 썼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들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 데 열을 올리기도 한다. 경기지사로 거론되는 추미애 법사위원장, 서울시장을 노리는 서영교·전현희 의원 등은 대법원 현장 국감 영상을 경쟁하듯 유튜브에 올렸다.

국감이 이런 수준으로 해마다 되풀이된다면 정치는 물론이고 국가 경제도 후퇴하고 국민 갈등·분노만 증폭될 것이다. 국감다운 국감을 하든가 그것이 어렵다면 아예 폐지하는 쪽을 검토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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