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경주 APEC 계기로 미‧일‧중과 정상회담… 국익 챙기는 후속 전략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백세시대 = 배지영 기자] 대한민국이 의장국으로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개최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행사의 차원을 넘어, 격랑 속의 세계질서에서 한국 외교의 중요한 관문이었다. 

특히 한·미, 한·일, 한·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렸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가운데 한국은 ‘균형자이자 중재자’로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한·미 정상회담이다. 우선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관세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미국은 일반 한국 제품 상호관세는 15%로 유지하고, 자동차·부품에 부과되던 25% 관세율도 15%로 낮추기로 했다. 

3500억 달러(약 501조원)의 대미 투자 조건도 우리 측 요구를 상당히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양국은 지난 7월 말 합의한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액 중 2000억 달러는 미국 정부가 만드는 특수목적법인(SPV)에 투자하고, 1500억 달러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넣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당초 전액 ‘현금 선불(Up Front)’ 투자를 고집하던 미국이 한국 정부의 집요한 요청을 대폭 수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간 200억 달러까지만 현금 투자하도록 제한한 것이 특히 주목할 부분이다.

핵추진잠수함 건조라는 깜짝 카드를 내밀어 트럼프의 승인을 이끌어낸 것도 예상치 못한 성과다.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 연료 공급 승인을 직접 요청한 것이 주효했다.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 권한도 약속받았다. 

핵추진잠수함은 디젤잠수함보다 훨씬 오랜 시간 잠수할 수 있고, 탐지되기 어렵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한국이 이러한 역량을 갖추면 한반도 및 동북아 해양 안보 환경에서 전략적 균형을 좀 더 주도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다만 기술 이전, 연료 공급, 원자력안전관리 등은 고도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이행에는 여러 국내외 제약을 푸는 절차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10년 이상 소원한 양국 관계를 정상화할 계기를 마련했다. 북·중·러 밀착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중 대화 복원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시각 차이가 여전했고, 중국의 서해 구조물 설치나 한한령 해제 등 민감한 현안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 방지, 통화스와프(두 나라의 중앙은행이 서로 약속한 통화를 빌려줄 수 있게 미리 계약하는 제도), 혁신창업 등 민생경제 분야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도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첫발을 잘 뗐다. 강경 보수로 평가받는 다카이치 총리와의 만남에 불안한 시선도 있었지만, 미래지향적 협력과 ‘셔틀 외교’(정상이 번갈아 방문함으로써 대화 채널을 유지하는 외교 방식)를 지속하기로 해 우려를 덜었다.

양국은 경제, 안보, 사회, 문화 등 폭넓은 의제를 다뤘다.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셔틀 외교 복원과 첨단기술·기후변화 대응, 인적교류 확대 등 실질적 협력 의제에서 진전이 있었다. 한·미·일 협력 구도 강화와 동북아 안보 협력의 기반을 다진 셈이다.

이번 경주 APEC을 통해 우리나라는 글로벌 시대의 ‘중심축 국가’로 올라설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겼다. 

외교의 성과는 사진 속 악수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한·미 협정에서 약속된 투자가 실제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재정·제도적 이행력 확보가 절실하다. 한·중 관계에서는 정치·안보 갈등을 관리하면서도 경제협력의 현실적 이익을 챙겨야 하고, 한·일 관계에서는 ‘역사’와 ‘경제’ 사이의 균형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실행의 외교, 내실의 경제, 그리고 지속성 있는 전략이다. 회담의 성과를 국내 산업·기술·인구정책과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회의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기회의 장’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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