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70대 초반의 지인이 6개월째 어린이집에 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3번, 하루 3시간씩 일하고 29만원을 받는 공공일자리이다.
지인이 나가는 어린이집은 거리상 5km 이내에 있다. 그러나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는 데다, 버스를 기다리며 걷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어린이집은 수용 인원 50여명 규모로 실내가 깨끗한 편이다. 지인이 하는 일은 오전 9시에 도착해 책상 위 먼지를 닦는 간단한 청소와 교육 및 야외활동 시 보조 역할 등이다. 지인 외 노인 참여자가 4명이 더 있다.
지인은 “취학 전 아이들이 글쓰기 학습, 만들기, 한자 배우기, 코딩, 텃밭 가꾸기 등을 하는데 우리는 어린이집 선생들 옆에서 보조 역할만 하지 아이들을 가르치지는 않는다”며 “무거운 걸 들거나 창문을 닦는 식의 위험한 일도 (어린이집 원장이)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지인은 이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달려와 안기고, 무릎에 앉아서 ‘할머니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말할 때 행복감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이 굳은 표정으로 불쾌했던 경험을 토로했다. 지인은 올케와 둘이 4박5일 일정으로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며칠 후 지인에게 일자리를 소개한 시니어센터의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해외 출국 기록이 있다”며 “어린이집에 나가는 날인데 그날 일을 했느냐”고 물었다.
지인이 “오전에 어린이집에 다녀오고 나서 집에 있다가 오후 7시 비행기를 탔다“고 하자 여직원이 “비행기 표를 보내달라”고 했다. 지인이 “비행기 표를 버렸다”고 하자 “그날 일 한 걸 확인해야 한다”며 끝까지 자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지인은 “하루 3시간 일한다면 얼핏 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외출 준비하고 버스 두 번 타고 오고 가고 하면 하루가 다 간다”며 “해외여행 다녀온 것까지 추적하는 건 사생활 침해가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과 수고에 비해 활동비가 적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50만 원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70대 중반의 지인은 ‘보행로 정보수집’이란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하고 있다. 장애인, 노인 등 보행 약자의 이동권을 돕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다. 2인 1조로 지역 내 보행로와 건물을 찾아다니며 출입문과 진입로, 내부 시설 등을 직접 촬영하고 ‘도어스캐너’(맞춤형 지도 제공)라는 앱에 등록하는 일이다. 이런 기록들이 하나둘씩 쌓여 보행약자를 위한 지도가 만들어지고, 이동권과 접근성 개선에도 활용된다.
지인은 “간혹 사진 촬영을 수상하게 여긴 건물주가 나타나 따지고 드는 일도 있는데 설명을 잘하면 이해하더라”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주5일 하루 3시간씩 일하고 월 76만원을 받는다.
지인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합쳐도 50만원 수준이라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몸을 계속 움직여 운동도 되고, 장애인을 돕는 일이라는 생각에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두 지인처럼 노인 일자리 참여자들로부터 다양한 요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학력 수준이 높고 건강한 베이비 부머(1955~1963년) 세대는 대우가 좋은 일자리를 선호한다.
현재 노인 일자리는 공공형과 사회서비스형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공공형은 위의 여성 지인이 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사회서비스형은 다시 역량활용사업과 역량활용선도모델로 구분된다. 역량활용사업은 공공행정 업무지원, 드론순찰, 지역문화 기록 등으로 월 76만원(60시간)을 받는다. 남성 지인이 하는 일자리이다. 역량활용선도모델은 산업안전관리, 돌봄사원 등(기업·기관에 인건비 지원)으로 월 34만원(최소 60시간)을 받는다.
위에 언급한 두 지인은 일자리가 다소 미흡한 부분은 있지만 건강 유지와 삶에서 소소한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엔 공감한다. 노인 빈곤을 해소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꾸준히 발굴·확산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