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대포의 파편 발견되고
대형 전파망원경 설치된 청송대
연세대서 자연 느낄 수 있는 공간
노년기 세속의 번잡함서 벗어나
나만의 성지를 찾게 해준 귀한 곳
청송대는 연세대 정문에서 백양로를 따라 캠퍼스를 오르다 노천극장을 끼고 돌면 마주하는 숲이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숲이 우거진 학생들의 휴식공간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솔잎 소리를 듣는 언덕’이라는 뜻의 청송대(聽松臺)는 사색과 고요함 속에서 교훈인 ‘진리와 자유’의 기독교 정신을 되새기는 장소로서 초대 총장 백낙준 박사가 작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캠퍼스에서 유일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연세인에게는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거기 세워져 있는 시비(詩碑)에 쓰여있듯이, 맑고 향기로운 바람을 맞으며 솔밭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으면 정말 한 특권을 가진 듯한 느낌이 든다.
속삭이듯 들려오는 나무들의 이야기는 여러 이유로 이곳을 찾는 산책객의 마음을 쓰다듬는다. 거친 세파 속에서 지치고 무너질 때 마음의 중심을 잡게 해주고, 결정의 순간에 망설이거나 진로 앞에 막막함을 느낄 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고, 격한 경쟁 속에서 휘청일 때 다정히 품어 위로해 준다.
소란한 세상을 뒤로 하여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곳,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고향 같은 곳이다. 바쁜 걸음이야 몇 분 통과하면서 기분전환 정도 하겠지만,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 방문객이라면 확실히 자연이 주는 치유 효과를 누린다. 내가 청송대를 숭고한 성지로 여기게 된 사연이 있다.
#1. 내가 1990년대 초 교수로 부임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청송대를 걷다 우연히 신학과의 원로이신 문상희 교수를 만났다. 교수님은 계속 땅 밑을 향해 두리번거리며 걸으셨다. 뭘 찾으시는가 여쭈니 비 온 뒤 끝에 청송대에 오면 땅바닥에서 대포 파편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하셨다. 그런 파편을 집에 많이 수집해 놓았다 하셨다.
그날도 놀랍게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의 찌그러지고 날카로운 파편 하나를 주우셨다. 6·25 전쟁 때 인천상륙작전 이후 유엔군과 한국군이 서울 탈환을 위해 나지막하지만 전략적 요충지인 연희56고지(현재 연세대 서문 과학관 근처)를 두고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그때 안산 쪽으로 떨어진 대포의 파편이 4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땅에 묻혀 있는 것이었다.
문 교수님은 교정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을 보면 붙잡아 놓고 엄한 훈시를 하거나 반항하면 따귀를 때리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셨는데, 한편으로는 후학들에게 동족상잔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전수하려는 열정적이면서 자상한 마음의 소유자이신 것 같았다. 문 교수님은 6.25의 비극을 간직한 청송대를 마음의 성지로 품고 살았던 순례자가 아니었을까?
#2. 2000년대 초 천문우주학과 변용익 교수는 우주를 관측하는 지름 20m 대형 전파망원경을 연세대에 설치하는 320억원 규모의 정부 사업을 유치해 놓았으나 그 입지를 놓고 학내 의견이 엇갈려 내홍을 겪은 일이 있다.
노천극장 옆 청송대 언덕 정상에 망원경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대학교 본부의 승인도 받았으나 문과대학 교수들이 중심이 된 교내 환경론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교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연공간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청송대를 훼손하면 결국 삭막한 시멘트 바닥만 남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공대학 건물 옥상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적당하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 시행을 정부가 무한정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변 교수는 애간장을 태우면서 교내 이곳저곳에 호소했다.
결국 내가 속해 있던 교수평의회가 중재해 여러 차례 공청회와 현장답사를 한 후 청송대 경관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언덕 정상의 물탱크를 지하화하고 지반이 튼튼한 곳을 선정하여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1000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는 은하, 그 은하가 1000억 개 이상 존재하는 광대하고 신비로운 우주를 관측하고 연구하는 곳을 성지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나는 청송대에 얽힌 이 두 에피소드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았다. 청송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잔악하고 비극적인 사건인 6.25 사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며, 동시에 인간의 능력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우주 탐색의 열정이 스며있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지는 최고의 신성과 최고의 야만이 공존하는 곳이다. 인간이 거룩하다고 여긴 곳, 곧 성지라고 불리는 땅들은 오히려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곳이기도 하다. 신의 이름으로, 민족의 이름으로, 혹은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이들이 검을 들고 그곳을 향했다.
그들에게 성지는 신성했지만, 동시에 정복의 대상이기도 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침략당하지 않은 성지가 어디 있으랴. 성지를 차지하는 것은 신의 편에 섰다는 증표, 혹은 역사의 중심에 자신을 세우려는 권력의 오만이다.
진정한 성지는 땅에 있는가? 아니면 인간의 마음에 있는가? 인간의 마음에 먼저 성지를 이룩하지 않고서는 결코 땅의 성지는 건설될 수 없다. 마음의 성지는 인류가 희구하는 사랑, 정의, 평화 그리고 공동체의 정신을 가꾸는 요람이다. 이 덕목들을 말로만 외치는 게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내 주변에서부터 실천하는 것이 성지를 만드는 시작이다.
노년기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때로 세속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면서 내 삶의 의미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면의 신성한 터전을 일구면 지나온 삶에 대해 후회와 부끄러움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자존감과 감사의 감정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마음의 성지에서는 자기를 직면하고 이해함으로 치유가 일어나고, 기도나 명상을 통해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와의 연결감을 경험함으로 정신적 자유와 영적 충만함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에 나만의 성지를 찾게 해준 청송대가 더없이 귀한 곳으로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