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국방부 장관의 ‘개꿈’”

[백세시대 = 오현주 기자] ‘핵잠’과 ‘원잠’, 과연 어느 것인가. 핵잠은 핵을 추진으로 하는 잠수함을 말한다. 핵무기를 싣고, 핵을 연료로 삼아 심해 속을 수십여 년 잠행할 수 있는 잠수함이다. 전 세계에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인도 등 6개 국가만 운용 중이다.

반면에 원잠은 원자력으로 추진하는 잠수함이다. 핵무기가 실리지 않은 일반 잠수함으로 단지 가동만 원자력을 사용한다. 원잠은 디젤 잠수함보다 속도가 2배쯤 빠르고, 수개월 연속 잠항이 가능해 장거리 해양 작전에 적합하다. 미국이 4년 전 호주에 공급하기로 한 잠수함이 바로 이것이다.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잠수함이 핵잠인지, 원잠인지 헷갈린다. 정부는 처음에 핵잠이라고 했다가 이를 원잠이라고 바꿨다. 그러곤 다시 핵잠이라고 해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당초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연료의 공급을 요청하며 ‘핵 추진 잠수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다 열흘도 채 안 돼 두 번이나 명칭을 바꾼 것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11월 5일, 정부 공식 명칭은 ‘원잠’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안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정부 공식 용어는 원잠”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식 명칭을 원자력 추진 잠수함으로 하기로 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어 “핵잠이라고 하면 핵폭탄을 탑재했다고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외교부도 “우리가 개발·운용을 추진하려는 것은 재래식 무장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며, 이는 NPT(핵확산금지조약)에 부합한다”고 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국방부는 다른 소리를 냈다. 국방부는 지난 11월 11일 핵잠 용어 재변경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논의를 통해 ‘핵잠’을 사용하기로 했다”며 “국민들이 익숙하게 인식하고 있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한 취지”라고 답했다. 

국방부의 이 같은 입장 발표 직후 안 장관도 덩달아 말을 바꿨다. 그는 “한국 조선업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기술력에 더해 ‘핵잠’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두 잠수함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그런데도 도입 예정인 잠수함이 단지 용어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명칭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는 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두 잠수함의 차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과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인지 ‘핵잠’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약간의 오해가 있으신 것 같다. 우리가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다.

‘작은 앞바다’를 끼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핵잠이 좋을까, 원잠이 좋을까. 군사 전문가들은 해양 구조상 ‘원잠이 낫다’는 주장을 편다. 즉 태평양처럼 넓은 바다에서 수년씩 잠행하며 작전하는 경우가 드문 경우라면 구태여 비싼 전략 자산을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한술 더 떠 “원잠도 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 대사는 “원잠을 북한 잠수함 70여 척 감시에만 이용한다면 너무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라며 “1개월간 잠함이 가능한 첨단 AIP(공기불요추진) 디젤 잠수함을 대량 건조하고, 한반도 해역 도처에 감시용 무인 잠수정과 수중 센서를 배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내 여론을 의식해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방부 장관은 핵잠이 마치 자주국방의 완성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안규백 장관은 “(핵잠이)동서남북 어디서 출몰할지 모르니 김정은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탄두 50여 기를 보유하고 있는 김정은은 이 말을 ‘개꿈’으로 여길 지도 모른다. 이러니 북한이 남한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저작권자 © 백세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댓글입력 권한이 없습니다.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