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삼우제, 사십구재 지내도
슬픔과 그리움 멈춰지지 않을 때
고맙고 힘들었던 순간들 떠올려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글로 쓰며
고인과의 사랑과 기쁨 정리하길
산에 오르면 꼭 내려와야 합니다. 내려오려고 올라가는 것처럼, 오른 자는 반드시 내려옵니다. 학교에 가면 꼭 집에 오고, 직장을 가려고 아침에 나가는 걸음 역시 늘 저녁이면 집을 향합니다. 우리는 모두 돌아올 목적으로 떠나갑니다.
그러나 떠나고는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지요. 상실은 그렇게 가족을 덮칩니다. 긴 병에 고비가 많았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이번에도 고비를 넘기시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임종도 못 지킨 채 떠나보낸 이들이 있지요.
남편을 잃고, 아내를 보낸 이들은 숨어서 울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잃은 이들은 보내지 못한 그 모습을 심장에 새겼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품고 울었던 분들도 계셨을 겁니다.
생명은 본래 신이 보냈던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만, 떠나보내는 이들은 바짓부리를 잡아서라도 붙잡고 싶어합니다. 가려는 자를 가지 못 가게 말리고 붙잡는 그건,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아쉬움이자 죄책일 겁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은 별빛 같은 순간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미움의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아서이기도 할 겁니다. 떠나보내고 잊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일을 돕기 위해 ‘의례’를 합니다.
장례식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몸을 떠나보내고, 미련 남기지 말고 떠나가라고 삼우제를 지내고, 사십구재는 좋은 곳으로 가길 기원하는 마지막 의례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명복’ 곧 저승에서 받는 복을 기원합니다.
이렇게 의례로 보내는 이유는 남은 자들을 위한 회복 절차이기도 합니다. 장례를 통해 울고 통곡할 자리를 만들어주고, 고인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들과 함께 울고 그들을 대접합니다. 장례로 고인을 공동체와 일상에서 분리하고 죽음이 준 일상의 혼돈을 정리하고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고통을 인정받게 되지요.
삼우제를 통해서는 고인과의 정서적 거리를 두게 하지요. 이때 감정도 정리하고 상실이 곧 현실임을 피부로 느끼고 현실을 바라보게 합니다. 사십구재를 지내며 남은 유가족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의례는 상실과 슬픔을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받아들이고 정서적으로 치유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살게 하는 중요한 문턱입니다.
때로, 차마 보내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좀 멈춰야 할 때라고들 하지만, 도무지 울음과 그리움이 멈추지 않는 것은 사랑과 죄책이 뭉쳐져 병이 된 겁니다.
장례를 마치고 모두가 떠난 후가 사실은 더 두렵지요. 말이 쉬워 ‘사별 증후군’이라고 하지만 그리움이 병이 되고 보고 싶음에 여전히 목이 메니, 그야말로 고인을 향한 상사병 같습니다. 보고 싶으나 볼 수 없고 안고 싶으나 안을 수 없는 그 사랑의 고통이 좀처럼 멈추지 않습니다.
쇼크로 멍해지고, 억지로 잊히지 않고, 슬픔도 멈춰지질 않고, 일상은 무너지고 감정도 함께 붕괴되기를 수개월 동안 하며 우울과 그리움이 범벅이 되고 뭉개져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꿈도 꾸고, 자주 한숨이 나오고, 식욕도 없지요. 아픈 것도 아닌데 기운이 없고, 때로는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지요. 때로는 임종 때의 장면이 떠올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그리고 여전히 그러하다면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그리움은 이미 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잊으려면 더 또렷해지지요. 그래서 떠나보낸 이들께 말씀드립니다.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라 멋지고 의미 있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고마웠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글로 써보면서 고인과의 사랑과 기쁨을 정리하기 바랍니다.
마치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짐 정리를 하듯, 떠나간 그에게 전하는 고마움과 아쉬움을 글로 적어 보면서 울음보다 더 선명하게 그 사람을 기념하게 됩니다. 고인이 나를 기억할 만큼 고인 대신 스스로를 특별히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억하세요. 슬픔은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슬픔도 차차 그 강도가 줄고, 간격도 줄 겁니다. 그건 그 사람을 잊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기억하고 기념하는 과정입니다. 떠난 이는 늘 남은 이들에게 선물을 줍니다. 그건 그들이 남긴 생명의 선물이니,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고, 남은 시간을 그들의 몫까지 살뜰히 살아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고인을 가장 잘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법입니다.
그들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오늘이 가장 아름답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