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위해 연해주로 갔다가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고려인들
일부 후손만 모국으로 영주귀국
경주 고려인 마을서 강연 요청
홍범도 장군의 정신 불어넣을 것
우리에게 ‘고려인’이란 말이 가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였다. 이 말은 소련이 붕괴된 뒤 구 소련지역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일컫는다.
현재 고려인의 숫자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들은 지난 19세기 후반 만주, 연해주 일대로 이주했던 한국인이 다시 북동쪽으로 이동해간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들의 선조는 연속된 흉년과 기근 때문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갔던 피눈물의 역사를 갖고 있다.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의 세력이 점차 커지게 되자 일본은 소련정부에게 이간질을 했다. 그것은 장차 일본이 연해주로 진출하게 될 때 조선인들이 모두 일본 편을 들 거라고 한 것이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스탈린은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령을 발동하고 20만 명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끌고 갔다. 수송 도구는 불결하기 짝이 없는 가축 운반 열차였다.
한겨울 폭풍과 눈보라 속에서 집행된 이 과정에서 10%가 넘는 2만 명가량의 고려인 유아, 노약자들이 열차 안에서 죽어 나갔다. 고려인 강제이주는 일종의 제노사이드, 즉 인종청소였다.
구소련이 몰락한 것은 1991년이다. 이후 중앙아시아 현지 고려인들의 삶은 점차 열악해졌다. 공민권이나 현지에서 누려야 할 권리에도 뚜렷한 제한이 걸려 있었다. 전체 고려인의 12%인 5만 명이 무국적 상태였다.
이들은 현지 사회의 모든 기본적 혜택에서 제외된다. 현지 국적 취득도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한국으로 귀환할 여건도 보장되지 못했다. 상당수의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그들이 원래 살았던 연해주로 되돌아갔다.
현지에서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고조되면서 고려인에 대한 박해와 불이익은 점점 심해졌다. 1993년 러시아 최고연방회의가 강제이주 고려인에 대한 복권조치를 발표했지만 그 어떤 가시적 혜택도 없었다.
고통의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 1세대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그 후손은 한국과의 인연조차 점점 멀어졌다. 현지에서도 한국어, 즉 고려 말은 일부 노인이나 쓸 수 있고 청년세대는 전혀 고려 말을 모른다. 오로지 러시아 말만 구사한다.
이런 여건 속에서 연해주 출신 일부 고려인은 영주귀국 혜택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록 한국어는 모르지만 자신이 고려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만큼은 깨닫고 있다. 유학이나 취업을 위해 한국으로 입국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약 3000명 정도의 고려인이 한국으로 입국했다.
현재 전국에 분포하는 고려인 집단거주지역은 다섯 군데 정도이다. 경기도 안산의 땟골마을, 전남 광주 월곡동의 고려인 마을, 충북 청주 봉명동의 고려인 마을, 인천 연수동의 함박마을, 경주 성건동의 고려인 마을 등이 그것이다. 그곳 상점들 간판은 모두 러시아말로 표기되어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필자는 최근 경주 고려인 마을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2025 외국인 주민 지역사회 적응 특성화 사업의 일환이다. 강연 제목은 ‘고려인과 홍범도 장군’이다. 이날 행사에는 고려인 시니어합창단의 노래 공연, 고려인 학생들의 태권도 시범 공연과 K-POP 댄스 공연이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고려인 청소년이 그간 익힌 풍류마당 사물놀이 공연도 예정돼 있다. 강연장에는 경주에서 중학교에 재학 중인 고려인 주인공들이 다수 참석한다. 한국어 해독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통역이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게 되니 상당한 불편이 예상된다.
하지만 필자는 이날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오로지 힘과 용기를 북돋우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 상징적 인물 표상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유한다.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고려인 선조들의 삶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할 것이다.
민족 영웅 홍범도 장군이야말로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고, 어떤 고난에도 용기를 꺾지 않았던 디아스포라의 전형이다. 홍범도 장군의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들려줄 것이다.
지금 한국어 학습이 어렵다면 어떻게든 그 힘든 언덕을 제압하고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면 내가 먼저 마음 열고 다가가서 연결과 소통을 해야 한다. 가슴에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옛 고려인 선조가 자신의 고난과 과감히 맞서 싸우며 큰 성취를 이루었듯이 그렇게 대결해 나가야 한다. 힘들더라도 하나씩 찬찬히 풀어나가면 언젠가 세상이 먼저 다가와 여러분을 다정하게 껴안아 줄 것이다. 부디 용기와 자존감을 갖고 버티어 나가라.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그 마음 자세이다. 부디 여러분 가슴 속의 빛을 믿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범도 장군이 평생토록 가슴에 품었던 용기, 정직, 연대의 정신을 항상 되새겨야 한다. 한국인의 민족사는 고난 그 자체였다. 지금 우리는 고난을 겪은 동포로서 서로를 잊지 않고 마음의 연결을 이어야 할 시기이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또 다른 홍범도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힘껏 노력해야 한다. 부디 자신을 믿고 친구를 사랑하며,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메시지를 그날 들려주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