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을 찾아서] “옥(玉)에 생명과 향기를” 중국도 놀란 옥 마술사
[명인을 찾아서] “옥(玉)에 생명과 향기를” 중국도 놀란 옥 마술사
  • 관리자
  • 승인 2007.02.0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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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원 씨-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玉匠)

“누군가 ‘옥 공예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묻기에 ‘90년 했다’고 답했더니 깜짝 놀라더라. 하루 20시간씩 작업을 했으니까 그렇게 대답했다.”

 

옥에 생명과 향기를 불어넣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玉匠). ‘옥 종주국’으로 자처하는 중국의 전문가들조차 실력을 인정하는 ‘옥 마술사’ 장주원(69)씨.


  옥 종주국 중국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옥장 장주원씨.

 

장주원씨는 “정말 열심히 했다. 다른 일을 이처럼 열심히 했으면 부자가 됐을 텐데…. 하지만 옥과 함께 살아 온 세월이 정말 행복하다”고 옥과 함께 한 외길 인생에 자부심을 표시했다.


목포시 갓바위에 자리한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는 장씨의 국보급 옥 공예품 80여점이 전시돼 있다. 사업비 20억원을 들여 2005년 9월 문을 연 전수교육관에는 장씨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방이 마련돼 있다.


옥에 삼라만상, 인생과 역사, 생명력을 불어넣는 장씨의 모습은 여느 장인과 달랐다. 딱 달라붙은 바지에 날렵한 구두, 목걸이를 하고 있는 모습부터 남다르다.


옥과 함께 한 각고(刻苦)의 세월을 조금이나마 엿 볼 수 있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5000년 옥 공예 역사를 가진 중국에서도 만들지 못했던 ‘자연석 이중고리’와 길이 74cm 크기의 세계에서 하나 뿐인 ‘대금’, 최근 한 방송사에서 1억3000만원짜리로 감정된 ‘원앙 주전자’ 등 국보급 작품들이 은근하고 오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옥 마술사’ 장씨의 외길 인생은 우연히 시작됐다. 먼저 그가 발을 들어놓았던 분야는 금은 세공이었다. 금은방을 운영하던 부친 어깨 너머로 금은 세공 기술을 익히던 1962년.

  장씨가 최근 옥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옥 연적.

 

그는 ‘천재적인’ 장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머리카락 보다 가는 금사(金絲)를 수백 개 이어 붙여 장식품을 만드는 매우 어려운 공정을 한 순간에 정복해 버린 것이다.


이후 그는 허름한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하루 20시간씩 작업에 매달릴 정도로 금은 세공 일에 몰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중국산 깨진 옥향로 수리를 의뢰했고, 이 일로 그의 인생행로도 바뀌었다.


금은 세공은 물론 보석세팅 분야에서도 최고를 자부하던 그였지만 옥향로를 아무리 뜯어봐도 수리는 물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차 알 길이 없었다. 보름간 침식을 잊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의 도전의식이 꿈틀댔다.


“옥 공예에 승부를 걸겠다….”


1964년 그는 본격적으로 옥 공예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앞길은 막막하기만 했다. 배울 곳도 없고 물어 볼 사람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지 상태였다. 그는 공방에 틀어박혀 혼자 연구하고 옥을 깎아내며 비법을 익혀 나갔다.


새로운 기술을 터득할 때면 대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하루 2~3시간만 잘 정도로 옥에 푹 빠져 버렸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도 이루지 못한 자연석을 그대로 가공, 고리 모양을 만드는 비법을 8년 만에 독학으로 깨우쳤다.


또 바늘구멍 같은 두 개의 구멍을 뚫은 뒤 이 곳을 통해 속살을 파내 옥 연적도 만들어냈다. 옥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는 중국인들도 만들지 못한 작품이다.


지금은 당대 최고의 옥 장인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장씨의 마음은 조급하다. 장씨는 “나이가 들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조급증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26년째 공을 들이고 있는 대형 작품 ‘코리아 판타지’와 ‘500 나한도’를 완성하는 게 그의 중요한 목표다. 그러나 그는 3톤짜리 옥 원석에 단군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담아낼 코리아 판타지와 나한도 작업을 잠시 중단했다.


초대형 작품인 ‘향로’를 올 가을에 완성하기 위해서다. 높이 72cm, 폭 55cm 크기의 이 향로는 이어 붙이지 않은 단일 작품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이 향로에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총 집결한다. 또 내년 국립박물관 기획 초대전에 출품할 ‘벼루 100선 연(選 硯)’도 준비 중이다. ‘훈민정음 벼루’를 중심으로 백, 청, 흑 옥으로 만든 신기에 가까운 벼루의 탄생을 위해 밤낮을 잊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옥 공예품에 대해 “단순한 조형과 미적 모양보다도 역사성과 우화적 배경이 담겨 있다”면서 “후손들에게 자긍심과 국가관을 심어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둔하고 멍청해 이 일을 한다”는 그는 “40년 역사의 한국 옥 공예가 5000년 역사의 중국 옥 공예를 일부분에서 뛰어 넘어서고 있지만 옥 공예를 배우는 사람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장씨는 “돈벌이도 안 되는 데다 원석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값도 천문학적이어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며 “중국에는 옥 공예가가 3000만명인데 우리나라는 15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0년 전 일본에서 30억엔(300억원)을 줄 테니 일본으로 귀화하라는 제의가 있었지만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말했다. 일본 문화를 꽃 피우는데 일조 할 수는 없어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상고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민족이 진정한 옥 종주국이라고 믿는 그는 옥을 통해 대화하면서 잊혀진 역사와 자존심을 되찾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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