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만 한평생 만복을 누리겠다는 생각은 바뀌어야 해요”
“끼리끼리만 한평생 만복을 누리겠다는 생각은 바뀌어야 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1.09 11:47
  • 호수 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론을 편 사회학자 김문조 고려대 교수

고려대에서만 33년간 석·박사 120명 배출… 2월 퇴임 후 사회통합 연구할 것
‘땅콩회항 사건’서 재벌 일가에 초법적 응징 원하는 건 ‘배상주의’ 심리 때문

저명한 사회학자 김문조(66) 고려대 교수는 ‘백세시대’와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땅콩회항 사건 등에서 한국인의 배상주의가 잘 드러난다”며 “유병언에 대해 법의 응징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그와 관련된 종교단체가 사라지기를 원한다. 법을 따지기 이전에 재벌 일가가 망해가는 걸 보기 원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과잉 감정을 없애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30여년 급변해온 한국사회를 사회학적 이론에 입각, 정확히 읽어내고 지향점을 제시해 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의 관심까지 불러 모은 학자이다. 33년의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오는 2월 정년퇴임하는 김 교수를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나 100세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노인상, 행복의 조건, 바람직한 통일 등에 대해 들었다.

-교수 생활 시작 당시에 비해 대학이 많이 변했을 것이다.
“1982년 9월부터 오늘까지 고려대에서만 33년을 가르쳤어요. 당시 우리학교는 여학생이 극소수에 불과한 남학생 위주의 캠퍼스였지만 지금은 그 숫자가 비슷해졌어요. 일부 단과대학이나 학과는 여초 현상까지 있는 실정입니다.”

-전두환 정권때 사회학과는 어땠는가.
“데모에 앞장 선 학생들은 과 구분이 없었지만 이념을 선도하는 학생들 가운데는 사회학과 학생들이 많았어요. 불의에 항거하는 그들을 교실로 불러들이는데 어려움이 많았지요.

-시위 학생 중 기억에 남는 제자는.
“아무래도 야권에서 활동하는 제자들이 많은데, 그 중에 김윤태 군은 정국이 매우 어렵던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직을 맡아 파국에 이르지 않고 슬기롭게 학생운동을 잘 이끌어갔다고 기억합니다. 지금은 저희 대학 세종캠퍼스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문적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나라당 국회의원, 대통령 정무수석을 역임한 후 현재 국회 사무처 사무총장으로 일는 박형준 군은 당시 최고 이론가로 학생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존경을 받았어요.”

-최근 ‘행복’을 주제로 강연했다. 행복은 무언가?
“행복은 복잡해요. 한 마디로 마음이 평온한 것이 행복이지요. 그런데 쾌락주의자들은 얕은 수준의 행복에 집착하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현인은 ‘행복을 보다 깊고 넓게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큰 사상가들도 그렇게 얘기하는데 우리도 말초적 수준을 넘어선 큰 의미로서의 행복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행복해지려면?
“스코틀랜드의 세계적인 유적 ‘스톤헨지’에 비교해 설명을 할 수 있겠네요. 이 유적처럼 여러 개의 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딱 두 개(출세와 재물)의 기둥 돌밖에 없어요. 행복의 기둥을 많이 세워야 해요. 삶의 외연을 넓히고 시각을 확장해 소담한 생활, 생명과 자연의 세계 등 경이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가치의 샘을 발굴해야 행복이 커집니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낮다.
“한국인의 심성적 틀을 들여다보면 실로 다양한 특성을 보입니다. ‘흥의 민족’이라고 하는가 하면 ‘한의 민족’이라고도 하고, 체면 문화를 내세우는가하면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눈총받기도 하고…. 이런 복잡다단한 심성적 특징들을 정리해보면 크게 다음 3가지로 압축돼요. ‘관계주의’는 혈연 중심의 친족주의나 연고주의로 자기 식구들이나 우리 편 사람들을 우선시하는 것이고, ‘현세주의’는 유교권 민족들이 공통적으로 그렇듯 내세적 영혼의 구원이 아닌 현세를 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이며, ‘배상주의’는 억울한 일을 당했으면 2배, 3배로 되돌려 받기를 원하는 것을 말해요. 이 3가지를 엮어보면 ‘아는 사람들끼리 한평생 만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배상주의’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경우를 보면 잘 이해될 것 같습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지난날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최대한 보상받아야겠다, 그런 심향이 우리 사회에 널리 깔려 있어요. 사람들은 유병언 일가를 법정에 세워 시시비비를 가려 응징한다는 것보다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일차적으로는 법적으로 엄히 다스려야 하되, 궁극적으로는 법리적 수준을 넘어선 초법적 응징이 가해져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이 형성될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의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재벌 일가의 위법을 따지기 전에 그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거지요.”

-해결 방법은 무언가.
“우리도 이제 생각하는 민족이 돼야 합니다. 욱하고 끝나지 말고. 최근 독일이 좋은 나라라고들 칭송합니다만, 독일에서 유학하거나 오랜 기간 살아온 사람들은 이구동성 독일 사회가 답답하기 그지없다고 할 때가 많지요. 교과 과정 하나 바꾸려고 몇 년을 토론해 가면서 시간을 끌지만, 우리는 하루아침에 교육제도가 전면적으로 바뀌곤 하잖아요. 얼핏 보면 후련하게 잘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지루할 정도로 온갖 토론을 거쳐 차근차근하는 게 오히려 혁신 비용이 적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김문조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미국 조지아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단에서 이론사회학, 지식사회학, 문화사회학 등을 가르쳐왔으며, 노동·정보사회·문화·과학기술·현대사상 분야의 폭넓은 연구를 수행해왔다. 한국이론사회학회, 한국과학기술사회학회, 한국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동아시아사회학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120여명의 석·박사 학위자를 배출했고 국내외 학계에 인정받는 뛰어난 연구활동으로 지난 1월 고려대학교 교우회가 제정한 제1회 교우회 학술상을 수상했고, 12월에는 시민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적으로 제63회 서울시 문화상(인문과학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인은 누구인가’ ‘융합문명론’ ‘한국사회의 양극화’ ‘한국사회와 일본사회의 변용’ 등 35권의 저서가 있으며, 120여편의 논문을 썼다.

-젊은이들이 노인을 우습게 여기는 것 같다.
“그걸 사회학 용어로 ‘제네럴 랩’(General Lap)이라고 해요. 아래 세대가 윗세대를 지배한다는 거지요. 젊은이들보다 스마트폰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노인이라는 이유로 대접을 받으려니까 아래 세대가 무시하는 것이 대표적 예인데, 기술변화의 속도가 증가하면서 이런 현상들이 커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노인이 너무 많아진 반면, 젊은 세대의 미래가 날로 어두워지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다른 연령층에 부담을 끼치지 않는 존재가 되느냐가 노인들의 1차적 과제라고 할 수 있지요. 연금도 대승적으로 양보할 자세가 돼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해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힘들지 않다면 삶의 우선권을 젊은 세대에게 터주어야 세대적 평화가 옵니다. 우리는 과거에 누렸으니까요. 경로당도 변해야 합니다. 장모님 모시러 경로당에 가보니 폐쇄적인 공간에 노인들만 모여 있더라고요. 경로당에 손자나 청소년들도 들락거리고 온라인 소통도 잘돼야 합니다.”

-65세를 넘어섰으니 노인이 됐다.
“저도 ‘지공’(지하철 공짜의 줄임말)이 됐어요. 그러나 건강이 개선돼 요즘은 다들 10여년은 더 일하기를 원하지요. 퇴임 후의 삶을 4가지로 생각해봤어요. 지금까지 해온 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할 건가, 아니면 연구 활동을 계속할 건가, 집안일에 전념할 건가, 혈육을 넘어선 사회봉사에 투신해 볼까를 고민해 봤지만 5년 간은 연구에 몰두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분야의 연구인가.
“사회통합이에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시 되는 양극화 현상도 사회통합이 이루어지면 해결돼요. 사회통합이라고 하면 체제를 연상하는 분들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이 통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사회적 원한이 해소돼야 합니다. 한국사회에는 원한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청문회도 발가벗겨서 혼내주는 식이에요. 가톨릭 예식에 비유하자면, 전국민이 고해성사를 해 다 털어버리고 갔으면 좋겠어요.”

-남북통일도 연구했는가.
“통일도 사회학 연구 과제의 하나지요. ‘통일이 대박’이라고 하지만 저는 통일이 순접적 결합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통일되고 난 후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등을 돌리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요. 우리는 미국의 인종정책처럼 통일 이후 똑같아지려는 환상 같은 것이 있어요. 북의 적화통일론은 다 같이 붉어지자는 것이고, 우리의 흡수통일은 북한 주민을 남한 사람들처럼 만들자는 거잖아요.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생각이나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게 융합적 통일론입니다. 다양성이 보장돼야 해요.”

-왜 화학에서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나.
“아버님이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셨어요. 자식 중에 아무도 화학을 하지 않아 막내인 제가 시작하게 됐는데 적성도 맞지 않고 성적도 그만그만해 전공을 바꾸었지요. 현실과 가장 밀착적인 학문을 하고 싶어 사회학을 택했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