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시인 나태주 공주문화원장 "함께 산 아내보다 소중한 사람 없어요”
‘풀꽃’ 시인 나태주 공주문화원장 "함께 산 아내보다 소중한 사람 없어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8.28 14:12
  • 호수 4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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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다 진한 건 피, 피보다 진한 건 시간…

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36권 출간… 연 100회 이상 강연하는 스타강사
쓸개 터져 죽음 문턱에서 투병 끝 쾌유… 현역으론 이례적으로 작가 위한 문학관 개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005년 발간된 시집 ‘쬐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에 수록된 시 ‘풀꽃’의 전문(全文)이다.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이 시가 유명해진 건 2013년 3월의 일이다. 교보생명이 계절마다 서울 세종로 교보생명빌딩에 내건 ‘광화문 글판’에 이 시를 큰 글씨로 적어놓았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요즘도 블로그 등 SNS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시는 공주문화원장으로 재직 중인 나태주(70) 시인의 펜 끝에서 탄생했다.
나 시인은 26세 때인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충남 서천 출신으로 43년 간 교사와 교장으로 재직하며 많은 작품을 써왔고 올해까지 36권의 창작시집(시선집 제외)을 출간했다. 또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만권의 책을 판매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공주시에서는 그의 문학 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해 ‘공주풀꽃문학관’을 개관했고 생존 문인으로는 이례적으로 풀꽃문학상을 제정해 올해 2회 수상자를 배출할 예정이다.
지난 8월 24일 충남 공주시 공주문화원에서 평소에 “나의 첫 번째 소원은 시인이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것, 세 번째는 공주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를 쓰게 된 이유가 있다면.
“여자가 좋아서 시인이 됐어요. 어릴 때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부모님이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과부인 외할머니와 지냈어요. 34살 차이 나는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살갑게 대하며 자랐지만 외로움을 많이 탔어요. 그러다 공주사범학교(현 공주교육대학교)에 다닐 때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됐어요. 저 여자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할까 고민하다 시를 발견하게 됐어요. 제대로 걸려 든 거죠.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죽을 것 같을 때 시를 쓰라고 했는데 당시가 그랬거든요. 결국은 잘 안 됐지만 그 여학생은 나에게 시의 씨앗을 심어주었죠.”

-시인 데뷔도 여자와 관계 있는지.
“제 시 중 ‘두 여자’라는 시가 있어요. ‘한 여자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시인이 됐고, 한 여자로부터 선택됐을 때 남편이 됐다’는 시인데 경험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사범학교를 나와 19살 때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에 군에 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했어요. 제대 후 복직해서 다시 교사 생활을 하다 동사무소에서 일하던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어요. 그 여자에게 매달리면서 그 힘든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를 썼어요. 그 시가 1971년도 서울신문 등단작입니다. 결국 그 여자와는 잘 안 됐죠.”

-소원대로 예쁜 여자와 결혼했나.
“1973년 중매로 아내를 만났어요. 첫 만남에 운명이라는 걸 느끼진 못했어요. 오히려 처음부터 그런 감정을 느꼈다면 위험한 것입니다. 진짜 좋은 여자는 살아가면서 점점 좋아지는 여자에요. 서로 노력하고 적응해 나가면서 좋아지는 여자. 다른 사람으로 대체 불가능할 때 그 사람이 예쁜 여자에요. 이 세상에 어떤 여자가 제가 라면을 먹고 싶다 하면 묻지도 않고 신라면을 끓여주고 고혈압인 나를 배려해 스프를 반만 넣어 줄까요. 지금의 제 아내밖에 없습니다. 물보다 진한 건 피고, 피보다 진한 건 시간이에요. 40년을 함께한 아내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나 시인은 2007년 쓸개가 터지면서 생긴 복막염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경험을 했다. 그의 지인들에 따르면 담당의사도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손을 놓은 상황이었고 가족들도 실제로 장례를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근 6개월간의 사투 끝에 기적 같이 병상에서 일어났고 이후 이를 바탕으로 한 확장된 시세계를 선보이면서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당시 이야기를 하자면 책으로 한 권 분량이에요. 쓸개에는 강력한 소화액이 있는데 그게 터져서 뱃속이 다 녹았어요. 의사가 말하길 10만분의 1의 확률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살아났냐고 많이 묻는데 그럴 때마다 살고자하는 욕망이 강했다고 답합니다. 자기생명력으로 버텨내면서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저를 선택해달라고.”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나.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죽음을 찾아가는 겁니다. 저는 이걸 생명 자발성의 원리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주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노화도 마찬가지로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늙는 것입니다. 죽음도 진화이고 성장이에요. 어쩔 수 없이 거치는 과정이고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거에요. 제가 한 번 겪어봐서 잘 알아요. 사람이 죽을 때는 도와줘야 합니다. 진화하고 있는 데 옆에서 슬퍼하면 안 돼요. 마지막 진화를 하고 있으니 경건하게 도와줘야 해요.”

-인생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겠다.
“인생의 중요한 것은 모두 시간하고 관계돼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시간이고 다음이 젊음, 건강, 아름다움이에요. 다섯 번째가 돈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해요.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안다면 그 다음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지구 위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어영부영 술 먹고 보낼 시간이 없는 거죠.”

-병이 낫고 더 바빠진 거 같다.
“1년에 강연을 100번 정도 해요. 저는 묻지마 강연을 합니다. 요청이 오면 강연료, 대상, 장소 등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강연을 하러 갑니다. 30만원을 받을 때도 있고 200만원을 받을 때도 있고 한 푼도 안 받을 때도 있어요. 제 얘기를 듣기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묻지 않고 갑니다. 돈과 상관없이 청중들이 진지하게 들어주기만 한다면 항상 최선을 다해요.”

나 시인은 인터뷰 도중에도 자신이 하는 말은 끊임없이 메모했다. 공주문화원장으로, 스타 강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는 틈틈이 시간이 빌 때마다 이런 메모를 바탕으로 시를 쓴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도중에도 시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 자전거를 세우고 머릿속 시상을 세상에 끄집어낸다. 시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숙련된 장인의 완고한 표정을 짓다가도 금세 인상 좋은 할아버지 같은 웃음을 짓는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36권의 시집을 냈다.
“제가 감정적으로 굉장히 충동적인 사람입니다. 시를 통해 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면 범죄자가 됐을 지도 몰라요. 시를 많이 쓴 게 중요하지 않아요. 시인은 한두 편의 시로 말하는 거에요.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처럼 시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시가 떠오른다면 그 시인은 사는 거에요. 시는 독자가 살리는 거에요. 시인들은 그걸 잘 몰라요. 저는 이걸 격양가의 시라고 말합니다. 격양가는 중국의 한 늙은 농부가 땅을 치면서 천하가 태평한 것을 노래한 데서 나온 말인데요, 시도 격양가와 같아야 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좋다고 해야 좋은 시입니다.”

-‘풀꽃’ 탄생 비화는.
“2002년 공주 상서초등학교장 재직 시절 아이들에게 자주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난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풀꽃을 그리게 됐죠. 그때 한 아이가 ‘어떻게 하면 잘 그릴 수 있나요’라고 물었고 제가 이렇게 답했죠. 그 풀꽃을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랫동안 보아야 한단다. 그러면 풀꽃이 예쁘게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이지. 그건 너희들도 그렇단다.”

-백세시대 독자 중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시를 잘 쓰는 비결은 없어요. 메르스에 치료약이 없어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정답은 없지만 비슷한 답은 있어요. 많이 쓰다보면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래도 권유하고 싶은 게 있어요. 송나라 구양수가 주창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다독, 다작이 중요한 줄 알았지만 지금은 다상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구상하고 빨리 쓰는 것이 좋죠.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것보다 배가 아파서 단숨에 일을 보는 게 더 시원한 것처럼 말이에요.”

-나태주문학관이 아닌 이유는?
“현역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문학관과 문학상이 있는 것 자체도 행운이에요. 풀꽃문학관과 문학상은 공주시민들이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에 ‘나태주’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섭섭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 오히려 고맙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제 계획은 ‘지금 이대로’입니다.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세상을 맞이하고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하루를 마감하자는 게 계획입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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