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논란에 한때 붓 꺾은 천재화가
‘친일’ 논란에 한때 붓 꺾은 천재화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6.24 13:56
  • 호수 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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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예술의전당 ‘어느 천재화가의 꿈’ 전

경주 출신 손일봉 탄생 110주년 기념전… 230여점 소개

▲ 이국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인 '여인과 바다'.

일제강점기 당시 ‘천재 화가’로 불리던 한 사람이 있다. 경성사범학교 재학 중 조선미술전람회에서 3년 연속 특선을 차지하며 주목받던 그는 일본 동경미술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일본에서도 그의 활약은 계속된다. 당시 일본 최고 권위인 제국미술전람회에서 4회 연속 입선을 거두며 천재성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활약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광복 후 그의 화려한 수상 이력은 친일 행적으로 여겨졌고 그는 30여년간 후학을 양성하며 강제 칩거해야 했다. 서양화가 손일봉(1906~1985) 이야기다.
손일봉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어느 천재화가의 꿈’이 오는 8월 31일까지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다.
광복 후 경주로 돌아 온 손일봉은 한국 최초의 예술학교인 ‘경주예술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한다. 하지만 불안정한 정국 탓에 경주예술학교가 폐교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교장 직에서 물러난 손일봉은 종군화가로 활동하며 아픔을 달랬고,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는 평소 소망하던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교직에서 물러난 뒤에야 다시 미술활동을 재개한 그는 1985년 전시회가 열리는 도중 쓰러졌고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제1회 경북도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제4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등을 지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대구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외에 유족이 간직하고 있는 작품까지 총 230여점이 전시돼 그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그의 회화는 인물이나 정물, 풍경 등 구체적인 대상을 선택해 그것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묘사의 범위를 최대한 축약시켜 빠르고 큰 붓으로 작업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풍경화는 단순하게 표현하면서도 단조롭지 않은 색상과 단호한 붓놀림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후기로 갈수록 부드럽고 온화한 색조로 자연주의적인 모습을 띠는데 탁월한 심미안을 바탕으로 평범한 소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는 1부 인물, 2부 동물과 정물, 3부 풍경, 4부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되는데 ‘여인과 바다’와 ‘오솔길’을 주목할 만하다.
‘여인과 바다’는 챙모자를 쓴 여성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물결치는 파도와 이를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오솔길은 푸른 산에 오르기 위해 가방을 메고 줄지어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향토적인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이와 함께 종군화가로 활동하면서 남긴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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