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에 대한 한 수집가의 절절한 사랑 느껴져
미술품에 대한 한 수집가의 절절한 사랑 느껴져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7.08 14:07
  • 호수 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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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여인의 초상’ 전
▲ 유명 미술품 수집가 하정웅이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한 2500여점으로 구성된 ‘하정웅컬렉션’ 중 이번 전시에서는 여성을 주제로한 작품 70여점이 소개된다. 사진은 전시에 소개된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의 대표작 ‘머리에 리본을 맨 소녀’.

하정웅 명예관장이 기증한 2500여점 중 여성 주제 70점 전시
로랑생‧피카소 등 해외작가 작품도… 무용가 최승희 사진 눈길

최근 국내 미술계는 이우환 화백 위작 논란으로 시끄럽다. 지난달 서울지방경찰청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를 토대로 위작으로 의심받던 13점이 가짜라고 발표한 순간 파문은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귀국해 직접 논란의 작품들을 살펴본 이 화백이 “모두 진짜”라고 밝히면서 진실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됐다. 이 과정에서 국과수가 위작판단의 근거로 삼은 게 광주시립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이 화백의 작품 37점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한 점에 수십억원에 달하는 이 화백의 작품을 한 사람이 기증했다는 것이다. 그 기증자가 미술품수집가인 하정웅(77) 명예관장이다.
하정웅컬렉션 ‘여인의 초상’전이 오는 11월 6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다. 하정웅컬렉션은 하 명예관장이 1993년(212점), 1999년(471점), 2003년 (1182점), 2010년(357점), 2012년(80점), 2014년(221점)에 걸쳐 기증한 2523점으로 이뤄졌다. 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기별로 100점씩 소개해도 6년 이상 걸리는 분량의 어마어마한 양이다. 몇 해 전 미술관이 보험을 들기 위해 그가 기증한 미술품의 가격을 산정한 결과 1000억원이 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인을 주제로 ‘이상적 아름다움으로서 여인’, ‘예술적 영감으로서 여인’, ‘여성의 삶과 애환’ 등 3개 주제로 공간을 나눠 작가 23명의 작품 7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프랑스 마리 로랑생(1883∼1956)의 대표작 ‘머리에 리본을 맨 소녀’가 관람객을 밝은 미소로 맞는다. 새까만 눈매를 한 소녀는 마치 동양인을 그린 듯 단아한 느낌을 풍기는데 전시의 첫 번째 공간인 ‘이상적 아름다움으로서 여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파스텔풍의 밝은 분위기를 풍기는 로랑생의 작품 외에도 피카소, 일본 후지타 투구하루, 야수오 구니요시 등 해외 작가와 재일작가 전화황, 광주 강연균, 김창희, 강철수 화백 등의 대표작을 전시한다.
이중 눈여겨볼 작품은 고인이 된 북한 무용가 최승희(1911~1967)의 사진 3점이다. 하 명예관장이 2003년 기증한 사진을 확대 출력한 것으로 1930년대 무용가로 시작해 광고모델, 영화배우 등으로 활동하며 유럽, 미국, 중남미까지 진출했던 최승희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찍은 것이라 해도 믿겨질 만큼 세련된 그녀의 모습은 왜 일본 대표 미인으로 선발됐는지 알게 해준다.
일본 기녀가 등장하는 나카가와 이사쿠 작품과 프랑스 화풍에 영향을 준 후지타 투구하루 스케치 작품 ‘유긴코’, 피카소가 말년에 만났던 마지막 여인을 그린 ‘여인상’ 작품 등도 인상적이다.
두번째 공간인 ‘예술적 영감으로서 여인’에서는 이탈리아 작가 알랭 본네프, 재일작가 오 일과 문승근, 곽인식의 작품 속 여인상을 통해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여인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 ‘여인의 초상’전 전시장의 내부 모습.

이중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오 일의 작품들이 볼만하다. ‘흰 모자를 쓴 소녀’, ‘소녀2’ ‘어머니2’ 등 작품 10여점은 작가가 어릴 적에 잠시 살았던 고국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린 것으로 애틋함이 느껴진다.
추상작가로 알려진 재일교포 문승근(1947∼1982)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번짐 효과를 활용해 개성 어린 여인 얼굴을 그렸다. 35살 나이에 요절한 그는 비슷한 연배인 이우환 화백과의 일화로 유명하다. 일본 화단에서 인정받기 위해 일본 이름을 사용하던 중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우환 화백에게 털어놓았고 “진짜 모습에 충실하라”는 말을 듣는다. 이후 문승근은 당당하게 한국 이름을 사용했고 작품에도 응어리를 떨쳐낸 그의 예술혼이 담겨있다.
마지막 공간은 주제 ‘여성의 삶과 애환’답게 짙은 녹색으로 고통, 절규 등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출산하는 여성을 그린 미국 벤샨 ‘해산하는 여자의 절규’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소재로 한 송영옥 작품 ‘영면(처)’ 등이 소개된다. 이중 일본인으로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진 도미야마 타에코가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를 그린 ‘광주의 어머니’가 인상적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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