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가
되려 왕관을 훔쳐
하늘에 오르려니
배알미 계곡에
비친 모습
웬 여자이런가
부끄러워 부끄러워
선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징검돌을 건널 때마다
꽃 남기다
오
산 나라 수국에서
시·김창진 전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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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국은 여름철에 산지의 계곡에서 비교적 쉽게 눈에 띄는 관목이다. 초여름에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평평하고 동그란 꽃차례를 이룬다.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흰색 또는 푸른색 꽃들은 모두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중성화로 꽃술이 없다. 사진은 하남의 검단산 배알미 계곡에서 찍은 것이다.
시인은 이 꽃의 생김새에서 왕관을 연상하면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패러디한다. 짓궂은 나무꾼에게 천의(天衣)를 잃은 선녀가 왕관을 훔쳐 쓰고라도 하늘로 오르려 하지만 벌거벗은 몸으로 어찌 그게 가당키나 할 것인가. “웬 여자이런가 / 부끄러워 부끄러워 / 선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 징검돌을 건널 때마다 / 꽃 남기다”라니, 시인은 이따금 예쁜 전설을 지어 내기도 하나 보다.
사진·글=이상옥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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