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갈라지는 공동생활… 현마는 차지 못함을 느꼈다
낮과 밤이 갈라지는 공동생활… 현마는 차지 못함을 느꼈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3.10 13:12
  • 호수 5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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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26>

“누가 안 사 준다게 이 다짐인가.”
“그럼 사 주시겠단 말이죠.”
“경우에 따라선 안 사 줄 법두 아닌데?”
“사 주겠으면 사 준다구 약속을 하세요.”
“그까짓 약속쯤 어렵지 않으나——제 청만 제 청이라구 우기지 말구 내 청이라는 것두 있겠지.”
빙그레 웃으면서 찻숟가락을 내흔든다.
“교환조건이란 말이죠. 무슨 청이세요. 들을 것이면 듣죠.”
“아주 선선하게 말한다.”
“설마 헤롯 왕이 조카딸 살로메에게 청한 것 같은 무례한 청이 아닌 바에야 못 들을 것 있어요.”
“요한의 목을 베라는 원이 아니니까 벌거숭이 춤을 청할 리는 없지만.”
“무슨 청이에요.”
그러나 현마의 청이라는 것은 그 자리에서는 보류된 채 두 사람은 밤거리로 나왔다. 현마는 맑은 정신으로는 그것을 말하기가 겸연쩍은 모양이었다. 찻집에서 나와서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끊어진 채 묵묵히 여관까지 돌아왔다.
실상인즉 미란이 먼저 택시로 여관으로 돌아오고 현마는 혼자 도중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허출한 김에 술집에 들릴 터이니 먼저 들어가라는 분부였다. 술동무까지를 할 수 없어 미란은 혼자 돌아와 자기 방 잠자리에 들어가서는 잡지를 펴들고 음악회에서 얻은 기억을 정리하면서 이 궁리 저 궁리에 잠겼다. 차를 따라 주러 들어온 하녀에게는 더 시중이 없다는 것을 말해서 돌려보낸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당초부터 그들은 여관에서는 방 두 칸을 따로따로 빌어 한 사람이 한 칸씩 구별을 엄격하게 해 온 것이다. 물론 미란의 희망과 현마의 체면의 두 가지의 협의의 결과로 처음부터 말없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정된 것이었다. 낮에 함께 거리를 다니고 구경을 가고 할 때에는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기쁨을 가지고 같은 감정을 지녀서 일종의 공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나 밤만은 세상이 전연 달라져서 각각 자기 방 자기 이불 속에 들어가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는 담이 놓이고 성이 쌓여서 그 독립된 세상에서 제 궁리에 잠기고 제 꿈을 꾸게 되어 완전히 자기만의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낮과 밤이 엄연하게 갈라지는 공동생활——처음에는 예측도 하지 못한 그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법칙에 미란은 안심할 수 있었고 현마는 반대로 차지 못함을 느꼈다. 두 사람이 집을 떠날 때에 세란은 두 사람의 모양을 바라보면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아저씨와 조카딸 같느니 사장과 여비서 같느니 하면서 인상을 비평하고 두 사람의 여행을 은근히 위험시한 것이었으나 실상의 경우는 이와 같이 엄격한 것으로 세란의 상상은 닿지도 않았다. 현마가 걱정하기 시작했던 세란과 단주의 사이가 허랑하게 빗나가게 된 것이지 미란과 현마의 사이는 되려 예측과는 반대였던 것이다. 미란은 밤마다 자기의 맑은 꿈속에서 안온한 잠을 이루고 날이 밝으면 새날의 경영에 마음이 뛰었다. 조그만 마음속에 감격을 가득 담아 가지고 밤 자리 속으로 돌아오면 그것이 차례차례로 정리되면서 정신이 차차 가라앉곤 한다. 단주의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흔히 이런 때였다. 하녀를 돌려보내고 음악회의 인상을 되풀이하고 있노라니 단주의 생각이 또 한번 떠오르며 집에서는 지금 어떤 생활들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비교적 일찍이 술에 거나한 현마가 돌아왔다.
얇은 장지 하나를 격한 방이라 미란은 잠자코 있을 수도 없어 소리를 쳐 보았을 때 현마는 대답하면서 방을 나와 미란의 방문을 건드렸다. 자리를 일어나 옷섶을 아물리고 있으려니 현마의 불그스름한 얼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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