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가 준 감동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가 준 감동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9.01 13:28
  • 호수 5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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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모리아, 프랑크 푸셀, 제임스 라스트…. 1970년을 전후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경음악단들이다. 이들 악단의 연주곡 ‘이사도라’ ‘외로운 양치기’ ‘눈물의 토카타’ 같은 곡들을 라디오를 통해 들으며 사춘기 떫은 감성을 키웠다. 여학생들은 이들 악단의 백판(LP)을 생일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그 시절에 우리나라에는 독립적인 연주 전문의 경음악단이 없었다. 귀에 익숙한 팝송과 클래식을 새롭게 편곡해 선보이는 이들 악단의 연주가 아름답고 서정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동경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요즘 당시의 경음악단과 같은 수준 높은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8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은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 공연이 그것이다.


이날 오케스트라의 공연 중 ‘대전블루스’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은 압권이었다. 대전블루스는 편곡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대중가요의 승화였다. 오보에와 현악기가 멜로디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환상적인 분위기로 끌고 갔다. 색서폰이 통렬한 음을 내는 순간 입속으로 ‘잘 있거라 나는 간다~’라는 가사가 절로 나왔다. 대전역을 배경으로 한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을 담은 곡이다. 끈적한 블루스 리듬과 애절한 가락으로 헤어지는 사람들의 비통한 심정을 잘 담아낸 이 곡을 남녀 가수들이 너도나도 불렀다.
음악은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다. 누구나 어떤 노래와 관련해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지독히 가난했던 어린 시절, 기자는 늘 허기졌다. 모친이 그날 하루 돈을 벌어 와야 온가족이 겨우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전파상 쇼윈도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던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모친을 기다리면서 스피커를 통해 들었던 곡이 대전블루스였다. 그러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서러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1812년 서곡’은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기념으로 만든 ‘표제음악’이다. 표제음악이란 작곡의 동기, 곡의 성격 등 표제가 붙은 기악곡을 말한다. 서곡의 출발은 7대의 첼로였다. 첼로가 인간의 목소리를 닮았다고는 하지만 깊고 심오한 도입부를 잘 끌어낼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콘트라베이스와 비올라가 뒤를 받쳐주어 장중한 소리가 살았다. 이날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는 베를린‧런던‧비엔나필하모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오소독스(정통)하고 섬세한 연주에 못지않은 순수한 감흥을 ‘코리안’들에게 주었다. 청중들 대부분이 벅찬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비록 작은 나라의 소박한 공연장에서 연주됐지만 그의 우주적, 범인류적인 음악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날 콘서트홀 1‧2‧3층이 가득 찼다. 공연장마다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이날만은 남성도 많은 자리를 메웠다. 2300여명이 가요, 팝송, 오페라, 클래식, 영화음악 심지어 게임음악에 웃고 울었다.
바리톤 서정학의 여유 있는 재담과 마초적인 목소리가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그는 무대에 올라 “여러분은 오늘 공연을 위해 6시간을 투자했으니 이곳에서 슈퍼갑의 자격으로 마음껏 즐기라”고 몇 번씩 강조했다. 그는 ‘야화’, 카르멘의 ‘투우사의 노래’ 등 음악 장르를 넘나들며, 동양인 최초로 SF 오페라 ‘메롤라 그랜드 파이널스’에서 최고 영예의 상을 수상한 경력답게 관객을 사로잡았다. 서정학이 소개했듯이 코리안팝스의 특징은 막강한 브라스 그리고 타악기 파트였다. 트럼펫‧트럼본‧튜바 등 20여대가 질러대는 황금빛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스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주하는 베이스기타, 신디사이저, 드럼, 색서폰은 마음껏 개인기를 펼쳤다. 영웅본색 주제곡 ‘당년정’을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에 숨이 멈출 지경이었다. 아코디언이 이렇게 감동적이며 서정적인 음색을 내는 악기인 줄 미처 몰랐다는 표정들이었다. 공연장 구석까지 명징하게 울려 퍼지는 트라이앵글 소리에 탄성이 나왔다. 곡이 끝날 때마다 작열하는 ‘공’(징의 일종) 소리가 순간적으로 고막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잘 차린 식탁’이었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취한 저녁식사였다. 풍성한 식탁을 준비하느라 애쓴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 단원들, 바리톤 서정학, 김봉 지휘자, 김미혜 대표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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