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 속에서 발견한 보물급 문화재들…‘쓰레기X사용설명서’ 전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발견한 보물급 문화재들…‘쓰레기X사용설명서’ 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9.08 13:54
  • 호수 5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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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에서는 쓰레기를 통해 인간의 삶을 되돌아본다. 사진은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알케미’.

폐지 줍는 노인 통해 발견한 정약용의 ‘하피첩’ 등 300점 유물 선봬
쓰레기 재활용 기업‧단체의 활동도 소개… ‘쓰레기 십장생’ 인상적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유배시절 부인 홍혜완의 치마에 글을 적어 두 아들에게 보낸다. 선비의 마음가짐, 삶을 풍족히 하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효와 우애의 가치 등이 적힌 이 ‘하피첩’(보물 제1683-2호)은 정약용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다 한국전쟁 때 분실돼 한동안 행방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2004년 수원의 한 건물주가 폐지 줍는 노인의 손수레에서 비범한 ‘폐품’ 하나를 발견해 자신의 것과 교환했는데 이것이 하피첩이었다. 이후 하피첩은 2006년 한 감정프로그램에 등장해 1억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피첩처럼 생활 속 쓰레기를 통해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전시가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10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쓰레기X사용설명서’ 전에서는 쓰레기로 사라질 뻔했던 문화재인 하피첩을 비롯해 거름통, 넝마 바구니, 지승병, 재활용 등잔, 포탄피 재떨이 등의 유물·사진 자료 300여점을 선보인다.

▲ 재활용 등기구.

전시는 쓰레기 고고학점 관점에서 구성됐다. ‘쓰레기 고고학(Garbage Archaeology)’이란 쓰레기를 대상으로 고고학 연구를 진행해 생활사를 복원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면 쓰레기를 뒤져 거주인의 규모와 생활양식, 식습관은 물론 건강상태 등을 복원하는 것을 말한다. 1971년 미국 고고학자 윌리엄 랏제가 애리조나주의 투손 쓰레기 매립지를 발굴한 것을 계기로 쓰레기 고고학은 중요한 학문분야로 자리 잡았다.
환경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이번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된다. 먼저 1부 ‘쓰레기를 만들다’에서는 사람들이 1주일 동안 얼마나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지를 영상물을 통해 보여준다. 4인 가구가 1주일 동안 배출한 쓰레기의 양은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꽉 채우고도 넘친다. 문명의 이기인 전자제품이 양산되면서 쓰레기가 폭증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한쪽에는 컵라면 용기와 나무 도시락의 초기 제품도 전시해 무분별한 1회용품 사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어지는 2부 ‘쓰레기를 처리하다’에서는 사회 문제로 떠오른 쓰레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재처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소개한다. 넝마 바구니, 폐지 손수레 등 폐자원 수집 도구와 함께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가 2009년 발굴한 ‘서울 행당동 출토 생활쓰레기 유물’ 등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특히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인·단체·기업의 대안이 인상적이다. 장난감을 재활용하는 사회적 기업 ‘금자동이’부터 버려지는 청바지로 가방을 만드는 마을기업 ‘리폼 맘스’, 양복을 기증받아 면접을 준비하는 구직 청년 등에게 값싸게 대여하는 ‘열린 옷장’, 제주 바다의 쓰레기를 수집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재주도 좋아’, 폐품을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시키는 리폼의 달인들까지 전시장에선 물건에 담긴 추억·의미를 교감하고 버림받는 물건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다양한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 1950년대 넝마 바구니와 집게.

전시의 마지막인 ‘쓰레기를 활용하다’에서는 재활용 등잔, 철모 똥바가지 등 재활용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유물 및 사진 자료를 통해 쓰레기로 오인 받아 버리질 뻔한 유물들과 함께 용도가 다한 물건들을 재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본다.
이 중 하피첩과 함께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의 사연이 인상적이다. 조선 영조 때 태실(胎室) 돌난간 조성 과정과 의식을 적은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는 영조의 태실 봉지기로 일했던 사람의 후손이 살던 집 다락에서 발견됐다. 먼지를 뒤집어쓴 유물은 청원군청에 기증됐고, 이것이 의궤임을 알아본 군청 직원의 노력으로 지난해 보물 제1901-11호로 지정됐다.
이와 함께 정크아트(재활용 미술)로 재탄생한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만인보’, ‘브리딩 플라워(Breathing Flower)’, ‘알케미(Alchemy)’ 작품이 설치됐다. 그리고 버려진 물건을 예술품으로 탄생시킨 김종인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의 ‘마니미니재미형(形)’도 소개된다.
특히 산‧구름‧물‧돌‧소나무 등의 전통적인 십장생을 현대의 다양한 쓰레기들로 대체한 십장생이 인상적이다. 스티로폼, 알루미늄 캔, 유리 같은 합성소재들이 자연분해가 되는 데에 오래 거리는 쓰레기를 십장생으로 풍자해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전시 기간 중 박물관에서 에코백·장난감을 무료로 교환하는 코너가 운영되고 매주 토요일마다 우산을 무료로 수리해주는 이벤트도 진행하며 전시의 의미를 더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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