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노인회 용인시 기흥구지회 ‘노인건강교육’ 현장
대한노인회 용인시 기흥구지회 ‘노인건강교육’ 현장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11.24 11:00
  • 호수 5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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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수준의 뇌 과학 강연… 여든살 노인도 척척 따라해 놀라워”
경기 용인시기흥구지회의 ‘보람된 노후를 위한 노인건강교육’에 참여한 회원들이 뇌를 그린 숙제 노트를 펴보이며 기념촬영했다. 뇌 과학 전문가인 박문호 강사는 “뇌 공부의 첫걸음은 뇌 구조를 그리는데서 출발한다”며 회원들에게 뇌 그림 숙제를 내주었다.
경기 용인시기흥구지회의 ‘보람된 노후를 위한 노인건강교육’에 참여한 회원들이 뇌를 그린 숙제 노트를 펴보이며 기념촬영했다. 뇌 과학 전문가인 박문호 강사는 “뇌 공부의 첫걸음은 뇌 구조를 그리는데서 출발한다”며 회원들에게 뇌 그림 숙제를 내주었다.

박문호 박사 등 국내 최고 전문가들에게 뇌질환‧당뇨병 교육 받아  

조영재 지회장 “수료자들 재능나눔활동 치매예방강사로 활동 계획”

[백세시대=오현주기자]

“자 따라 하세요. ‘치매는 기억이다’.”

강사의 말에 100여명의 남녀 어르신들이 커다란 목소리로 ‘치매는 기억이다’라고 복창했다. 강당 안은 영하권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면학 열기가 뜨거웠다. 11월 18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노인복지관 4층에서 열린 ‘보람된 노후를 위한 노인건강교육’에서다. 

이날 강사로 나선 뇌 과학 전문가 박문호(58) 박사는 “치매에 관한 몇 가지정보를 안다고 해도 근본은 모른다. 치매는 한마디로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정신분열도 기억을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시기흥구지회(지회장 조영재)가 주관하는 노인건강교육은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치매 등 뇌질환과 당뇨병의 원인‧예방‧대책을 총 40시간에 걸쳐 공부하는 교육 프로그램(10월 21~12월 23일)이다. 아울러 배움을 통한 어른다운 노인, 재능기부 등의 목적도 있다. 

조영재 지회장은 인사말에서 “평생 학습을 통해 품위 있는 어른으로 사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영재 지회장은 인사말에서 “평생 학습을 통해 품위 있는 어른으로 사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영재 지회장은 “사람은 배운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그 행동이 인격과 품격을 결정한다”며 “평생 학습을 통해 품위 있는 어른으로 사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 대상자는 고졸 이상으로 정했다. 뇌 과학 용어 대부분이 영어이고 강의 내용도 어려운 점을 감안해서다. 실제로 대졸자가 50% 가까이 된다고 한다.

강사진도 화려하다. 우리나라 과학자 중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조장희 박사, 세계신경외과학회 부회장을 지낸 최길수 서울대 명예교수, 치매진단의 권위자 백선화 박사, 치매예방 전문가 김우정 박사, 당뇨병 전문의 윤태욱 박사, 치매요양의 요람 경기도치매센터 등이다. 

이날 박 박사는 총 20시간 강의 중 마지막 4시간을 강연했다. 미국 텍사스 에이앤엠(Texas A&M) 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뇌 과학을 13년간 공부해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박 박사는 인터넷 사이트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도 운영 중이다. 물리‧천문‧지질학 등 자연과학을 배우는 이 사이트의 회원이 7000명에 이른다. 그가 뇌 과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도 천문학이었다. 그는 “어릴 적 별을 보는 거나 천문학 공부를 좋아했다. 우주시대가 열리게 됐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종교와 철학에 연연하는 이유는 무얼까 궁금해서 뇌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뇌 그림 그리기 숙제도 열심히

박 박사의 강의는 독특하다. 어려운 뇌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뇌 구조를 그려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에 앞서 뇌 용어들을 암기하라고 가르친다. 외우고 외우다 보면 뇌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른 경험과 연결되면서 자연히 이해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항상 뇌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오후 1시가 조금 못된 시각, 강연장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강연장 입구에 책상을 놓고 남녀 학생장이 회원들의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숙제검사다. 서구경 남자학생장(77‧마북분회장)은 “박문호 박사가 일주일 전 강의에서 뇌구조 그림 6가지를 5번씩 그려오라고 했다. 숙제를 다 마치려면 10시간은 족히 걸린다. 모두 그리면 상, 3번만 그리면 중, 한번이라도 그리면 하를 준다”며 “회원들이 집과 도서관에서 아주 열심히 그려온다”고 말했다. 김기옥 여자학생장도 옆에서 “의대생들도 이만큼 그리기 어려울 정도로 뇌 그림을 세밀하게 잘 그린다”고 거들었다. 

이날 대형스케치북에 뇌 그림을 정밀하게 그려 눈길을 끈 강정훈 어르신(수의사)은 “처음엔 노인들에게 웬 숙제냐고 펄펄 뛰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칭형의 중추신경계 신경이 어디로 향하는가를 그리다보면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그림을 완성한 후에는 희열 같은 것도 느낀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강의 앞부분에 자신이 최근 펴낸 ‘박문호의 뇌 과학 공부’(김영사) 책 내용을 도해를 중심으로 소개했다. 그는 “총 540쪽 분량에서 기억에 대해서만 200여쪽을 할애한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3억년 전부터 대뇌의 신피질이 확장되면서 원시피질이 안으로 말려들어가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가 됐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이어 “기억의 기본요소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느냐, 즉, 장소와 사물의 결합이다. 장소정보와 사물정보의 결합을 처리하는 게 해마이고 그게 기억의 출발”이라고 덧붙였다. 

박 박사는 또, “인간은 직장, 집, 종교시설 등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뜻은 인간행동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장소에 결부된 행동밖에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과 역사학을 넘나드는 풍부한 지식과 사례로 강의를 재밌게 이끌어갔다. 어려운 뇌 과학 강의실에 조는 이들이 생기지만 그의 시간엔 그런 장면을 보기 힘들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779년은 어떤 해인가. 태평양을 3번 횡단한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사망함에 따라 대항해의 막이 내린 해이다. 여기에 20년을 더하면 훔볼트란 독일인 자연과학자가 남아메리카를 탐험한 해이다. 이런 방식으로 연도를 외면 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박 박사의 강의 중 인상 깊은 대목 몇 가지. 뇌에서 후각세포와 해마세포만이 세포를 만들어내고 우울증, 스트레스 받으면 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산소운동을 해도 세포가 만들어진다. 노인이 고지식한 이유는 학습하지 않아 학습기억이 줄어들어 그렇다.

또, 뇌는 운동을 만들어내는 기능이 있는데 원숭이를 비롯 어떤 동물도 마라톤을 하지 못하며 단지 인간만이 5시간을 달리는 동물이다. 

서구경 남자학생장(왼쪽)이 강의 시작 전 회원들이 그려온 뇌 그림 숙제검사를 하고 있다.
서구경 남자학생장(왼쪽)이 강의 시작 전 회원들이 그려온 뇌 그림 숙제검사를 하고 있다.

“치매에 대한 막연한 불안 사라져” 

박 박사의 강의 중 또 하나의 특징은 복창이다. 중요한 부분마다 큰소리로 따라하도록 한다. 회원 가운데 유난히 큰소리로 뇌 과학 용어를 따라한 김소금(82) 어르신은 “제가 노인대학을 8년째 다닌 모범생인데 뇌 공부는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론 무척 재밌다”며 “뇌의 어디가 잘못돼 파킨슨병에 걸리는지 알기 위해 강의를 듣게 된 이후로 치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강연 끄트머리에 질문이 이어졌다. 술을 많이 마셔도 치매가 되느냐고 묻자 박 박사는 “알코올이 뇌세포를 파괴해 혈관성 치매로 진행된다”라고 대답했다. “꿈은 예지능력이 있는가”라고 묻자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꿈은 기억과 관계있다”고 대답했다.

박문호 박사는 마지막으로 “지난 5주 동안 공부하는 습관, 방법을 전달했다. 숙제 등 자료를 바탕으로 1년, 2년 그 이상 10년을 공부하면 의사선생과 대화할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해 커다란 박수를 받았다. 노인건강교육에 꼬박 참여한 이두호(74) 어르신은 “우리가 공부한 내용이 의대생 수준이라고 들었다”며 “앞으로 뇌 과학 책을 더 많이 읽고 브레인 전문가가 돼 많은 노인들과 내가 배운 걸 공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날 강연은 기흥구지회의 120여개 경로당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이번 교육을 마친 회원들은 내년에 경로당을 돌며 교육 강사로 나서게 된다. 

조영재 지회장은 “내년도 재능나눔활동에 치매예방교육을 강화해 이번 교육을 수료한 회원들로 하여금 교육강사로 봉사하게 할 생각”이라며 “이런 교육이 다른 지회에도 전파돼 노인의 건강과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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