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판화하다 - 한국현대판화 60년’ 전 목판화부터 실크스크린까지… 판화의 역사 한눈에
경기도미술관 ‘판화하다 - 한국현대판화 60년’ 전 목판화부터 실크스크린까지… 판화의 역사 한눈에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7.27 11:01
  • 호수 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김정자, 이항성, 윤명로 등 국내 대표 판화가 120명의 대표작 160여점 선봬

무의 새싹으로 표현한 ‘자라나는 이미지-말’, 부식 기법 ‘빛 88-E4’ 등 눈길

한국 판화 60년을 기념하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이번 전시에서는 김정자, 이항성 등 대표 판화가들이 보여준 다양한 기법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은 박영근의 1996년 작 '베드로에 관하여-성전'
한국 판화 60년을 기념하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이번 전시에서는 김정자, 이항성 등 대표 판화가들이 보여준 다양한 기법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은 박영근의 1996년 작 '베드로에 관하여-성전'

“이게 판화라고?”

지난 7월 24일 경기도미술관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흰 솜을 가득 채운 투명 플라스틱 상자에 무의 새싹을 활용, 녹색 말 두 마리를 새겨놓은 권순왕의 ‘자라나는 이미지-말’을 포함한 160여점의 판화는 예상을 넘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현대판화 60년을 돌아본다는 원대한 취지에 걸맞은 화려한 상차림으로 관객들을 맞고 있었다.

‘판화하다 - 한국현대판화 60년’ 전이 오는 9월 9월까지 경기 안산시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정자, 이항성, 윤명로 등 한국현대판화사를 대표하는 작가 120명의 대표작을 통해 한국현대판화의 흐름을 조명한다. 전통적인 목판화부터 현대미술과 결합한 실험적 작품까지 현대판화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5개 섹션으로 나뉜다. ‘각인하다’, ‘부식하다’, ‘그리다’, ‘투과하다’, ‘실험하다’ 등 판화의 작업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 해당하는 작품을 소개한다. 

먼저 ‘각인하다’에선 전통적인 조각도로 판을 파내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목판을 조각도로 파내더라도 하나의 판을 점진적으로 소거하는 판화법을 이용한 신장식의 ‘아리랑-기원’, 전동드릴과 전기공구로 목판을 긁어내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한 박영근 ‘베드로에 관하여-성전’ 등이 눈길을 끈다.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판재에 각인하거나 부식하고, 그리거나 투과하고 실험하는 각각의 판화 행위가 작가의 심리상태나 현대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부식하다’에서는 산(酸)을 이용해 판을 간접적으로 제거시키는 방식을 소개한다. 판 아래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각인과 비슷하지만, 구리나 아연판에 날카로운 도구로 이미지를 새긴 후 산화시키는 화학적 과정을 거쳐 목판이 가질 수 없는 정밀하고 단호한 표현을 갖는다. 

금속 바늘로 가늘고 무수한 그물망을 새겨 넣어 찬란한 빛을 표현한 하동철의 ‘빛 88-E4’(1983), 선의 교차와 톤의 변화가 정교한 조형미를 이루는 한운성의 ‘매듭이 있는 풍경Ⅶ’(1988) 등은 부식 행위가 빚어내는 정밀한 표현력을 잘 보여 준다.

판면의 높이 차를 이용하는 앞선 작품들과 다르게 ‘그리다’에서는 평면 위에 직접 그려 찍어낸 작품들을 소개한다. 오일을 베이스로 한 도구를 이용해 판 위에 형태를 그리고,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원리로 이미지 부분만을 프레스로 찍는 ‘리소그래피(lithography)’ 작품들을 주로 소개한다. 매끄러운 석판이나 금속 위에 자유롭게 그린 모습 그대로를 찍기 때문에 각인과 부식의 방식에 비하여 풍부한 조형표현이 특징이고, ‘가장 회화적인 판화’, ‘판화와 회화의 중간 장르’로 불린다.

리소그래피는 압력에 의해 기름 성분이 물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우연적 효과가 더해지며 연필이나 색연필, 크래용, 유성잉크 등 유지성 재료라면 모두 사용이 가능해 다른 기법에 비해 재료 선택의 폭이 넓다. 전시에서는 김정임의 ‘리듬 9401’을 비롯 색조와 음영의 리드미컬한 변화나 유동적인 번짐 효과로 한 폭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투과하다’에서는 판에 구멍을 내거나 섬유 사이로 잉크를 투과시켜 찍는 방식을 소개한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주로 사용했던 ‘실크스크린’ 기법 등이 해당되며, 판에 안료를 올린 후 종이를 엎어 찍는 이전 섹션과 다르게 이미지가 반전되지 않는다. 1950년대부터 대학에서 판화를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고 판화의 대중적 이해를 도모한 김정자와 한국현대미술사 속에서 실험적인 작업세계를 펼쳤던 강국진의 실크스크린 작품이 대표적이다. 

마지막 ‘실험하다’에서는 정통 판화의 개념을 확장하고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동시대 작가들에게 판화의 개념이 어떠한 의미로 이어지고 있는지, 현대미술계에서 어떻게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중 투명한 아크릴과 유리에 조형 이미지들을 겹겹이 쌓은 나광호 작가의 ‘익은 것과 날 것’은 판화가 ‘확장의 작업’임을 확인시켜 준다. 작가가 가르친 아이들의 낙서들을 모아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었다.

신장식 한국판화협회 회장은 “한국현대판화는 60년 역사로 보지만, 목판화는 고려‧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199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컴퓨터를 작업에 활용하며 판화가 더욱 다양해지고 필름, 비디오, 영상과 융합되며 새로운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