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부유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첫선…국립고궁박물관서 2월 10일까지
작지만 부유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첫선…국립고궁박물관서 2월 10일까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1.18 14:01
  • 호수 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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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공작이 다스리는 공국서 유래… 가구‧장식품 등 왕가 소장품, 문화 소개

연수정 통째 깎아 만든 ‘마이엥크루그’, 돌상감 기법의 장식함 등 눈길

2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전에서는 왕가의 소장품을 통해 작지만 부유한 리히텐슈타인의 역사를 들여다본다.사진은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화.
2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전에서는 왕가의 소장품을 통해 작지만 부유한 리히텐슈타인의 역사를 들여다본다.사진은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화.

서울 면적의 4분 1에 불과한 세계에서 6번째로 작은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공식적으로 1인당 GDP가 우리나라의 4배인 14만 달러에 달하는 부유한 나라.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이야기다. 

이 작지만 부유한 나라의 유물을 대거 소개하는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2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전에서는 가문의 역사와 함께 꾸준히 조성한 높은 수준의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 소장품을 바탕으로 왕가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고궁박물관이 베트남·헝가리·일본 오키나와에 이어 네 번째로 마련한 왕실 특별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공국시절 1대 대공 카를 1세의 초상화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공국(公國)은 황제 또는 왕이 아닌 공작(公爵)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한다. 대공이라고 높여 부르는데, 황제 또는 왕에게 통치권을 인정받아 독립적인 영토를 다스리며 왕위 계승권이 있는 군주를 의미한다. 현재 리히텐슈타인은 엄연히 독립된 입헌군주국이다.

국가의 이름은 왕가의 성에서 따랐다. ‘리히텐슈타인’의 이름이 역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1120년대로, ‘후고’라는 이름의 귀족이 그 시작이었다. 왕가의 시작인 후고는 12세기 초반 남쪽에 성을 짓고 세력을 키워 점차 빈과 체코 모라비아 지역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러다 1608년 카를 1세가 합스부르크 황실로부터 대공 지위를 받음으로써 왕가의 기반을 다졌다. 

이어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가 현재 리히텐슈타인인 셸렌베르크와 파두츠 지역을 구입하고, 1719년에 안톤 플로리안 1세가 두 지역을 합쳐 황실의 연방국가로 인정받으면서 공국으로 리히텐슈타인의 역사가 시작됐다. 

전시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6세 황제가 파두츠오 셸렌베르크의 영토를 합쳐 이를 가문의 이름과 동명인 리히텐슈타인 공국으로 승격시킨 문서를 살펴볼 수 있다. 

이어 등장하는 연수정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 만든 ‘마이엥크루그’(뚜껑 달린 병)도 눈여겨 볼 만하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이 마이엥크루그는 당시 왕가의 위세를 잘 보여준다. 

왕가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에서는 화려함으로 관람객들의 이목을 끈다. 색깔 있는 돌을 짜 맞춰 장식하는 석상감(石象嵌) 기법인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를 써서 제작한 가구는 우리나라 고려의 나전칠기 못지않은 치밀한 수공의 힘을 느끼게 한다. 

새장과 시계가 있는 샹들리에도 눈길을 끈다. 멀리서 새장처럼 보이는 샹들리에는 밑면이 시계로 이뤄져 있다. 높은 곳에 매달아뒀을 경우 사람들이 두루 시계를 볼 수 있는 방식이며 15분마다 새 장식이 지저귄다. 이 시계 샹들리에는 유럽에서 인기였으며 중국 황실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리히텐슈타인의 시계 기술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공국 초기에는 통치자를 곧 ‘신’으로 여겼다. 리히텐슈타인 왕가 식구들의 초상화에서도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흔적들이 발견된다. 알로이스 1세 대공비(대공의 아내)인 카롤리네(1768∼1831)의 초상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의 초상화가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1755∼1842)이 그린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1793)은 카롤리네 대공비의 모습을 하늘의 여신 아이리스처럼 묘사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를 수입해 사용하다가 18세기부터는 빈 도자기 공장의 도자기를 주로 구입했다. 독일 마이센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빈 도자기공장은 깨끗한 색채와 도금, 유려한 기형으로 명성을 쌓았다. 빈 도자기 초기의 이국적 문양부터 황실 취향이 반영된 화려한 로코코 양식과 다채로운 색, 회화를 구현한 도자기 등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에는 나폴레옹이 로마에서 사용하기 위해 주문 제작한 은식기를 실제 왕실 규범에 맞게 식탁에 차려놓았다. 벨베데레궁 정원에서 바라본 빈의 전경을 그대로 그려넣은 도자기, 귀한 식재료를 그릇마다 달리 그려 메뉴에 맞출 수 있게 한 그릇 등은 감탄을 자아낸다.

귀족의 특권인 말 사육과 석궁 등 사냥 관련 유물도 선보인다. 기사의 갑옷도 풀세트로 전시됐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예술 후원을 법제화한 나라였고 그를 통해 수집한 회화와 조각도 감상할 수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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