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빨리빨리문화’와 부주의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빨리빨리문화’와 부주의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5.31 14:34
  • 호수 6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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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과 함께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한식당을 방문했다. 적당히 배를 채운 후 대화하며 먹을 음식을 챙기러 후식코너에 갔다가 추억의 와플기계를 발견했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만 해도 학교 앞에는 문방구와 분식집이 필수였다. 떡볶이‧튀김‧순대를 앞세워 당시 초등학생들을 공략하던 분식집 주인장은 종종 새로운 메뉴를 선보였는데 그 중 하나가 와플이었다. 

오랜만에 옛 생각이 나 다가가니 예상과 달리 이용자가 직접 조리하는 방식이었다. 늘 만들어진 걸 먹기만 해서 순간 당황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와플기계 사용법이 적힌 안내문을 발견했고 필자의 차례를 기다리며 앞사람들이 만드는 법을 지켜봤는데… 엉망진창이었다. 

설명서에 적힌 와플을 만드는 법은 이렇다. 계량컵에 반죽을 가득 채운 후 와플기계에 골고루 뿌린다. 이후 ‘오프’(꺼짐)로 돼 있는 버튼을 눌러 ‘온’(켜짐)으로 바꾼 후 2분간 기다린다. 완성을 알리는 음악이 울리면 다시 ‘오프’로 바꾼 후 준비 된 집게로 와플을 조심스럽게 꺼내 취향에 맞게 옆에 준비된 생크림과 잼 등을 발라먹으면 된다.

사용방법은 다소 길었지만 명쾌해서 초등학생들도 쉽게 따라할 정도였다. 문제는 사람들이 마음만 급해서 설명서를 읽지 않고 감에 의지해 와플을 만드는 것이었다. 반죽을 붓는 건 대부분 잘했다. 하지만 온 버튼을 누르는 걸 까먹거나 완성된 후 음악이 나오는데도 오프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냥 가 뒷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등 실수투성이였다. 한 이용자는 심지어 와플 반죽 위에 잼을 올린 후 생크림까지 올리려다 지인의 만류로 관뒀다.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어 와플기계 주위를 돌며 어떻게 만드나 관찰했는데 10명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설명서를 읽지 않은 채 만들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하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문화’ 탓이라는 결론을 냈다.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어 언젠가부터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빨리빨리문화. 필자도 앞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면 급한 마음에 같은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거의 대부분이 설명서를 읽지 않고 일단 만들고 보는 모습은 웃기면서도 슬펐다.    

식사를 마친 후 지인과 한국의 빨리빨리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당을 나섰다. 그리고 출입문에 다가가서 문을 밀었는데 열리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몸을 실어 힘껏 밀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바라보니 선명하게 ‘당기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필자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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