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솔거와 김홍도
[백세시대 / 세상읽기] 솔거와 김홍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1.03 15:16
  • 호수 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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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딱히 갈 곳이 없어 집 근처 흥국사를 찾았다. 우리나라 남성들이라면 다들 아는 예비군훈련장이 있는 노고산 가는 길에 있다. 흥국사는 서기 661년 신라 문무왕 원년에 원효스님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은평구 구파발까지 사찰 땅이었다고 하니 절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간다. 

천년고찰답게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그 중 경기문화재 자료 제104호인 아미타여래좌상 뒤편에 그려진 ‘극락 구품도’(경기 유형문화재 제143호)가 김홍도의 그림이라는 설이 있다. 이 그림은 가로 214cm, 세로 154cm로 화면 전체를 9등분해 극락세계를 자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 톤이고 사찰 측에서 작품 훼손을 예방하려고 유리로 덮어 가까이 들여다봐도 무슨 그림인지 분간이 안 간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부처의 10대 제자들과 보살들, 장엄한 궁전과 연꽃, 보리수나무, 극락조, 코끼리 등이 보인다. 풍속도의 대가로만 알고 있는 김홍도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화풍이라 과연 김홍도 그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최근 기자에게 제목부터 호기심을 끄는 책 한 권이 배달됐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국 회화의 4대가’(사회평론아카데미). 역사 이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4명에 대해 쓴 책이다. 우선 그 네 명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교수라면 선정 기준의 타당·객관성도 신뢰가 간다. 안 교수는 서울대 문리과대학 고고인류학과, 미 하버드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문학석사, 철학박사)와 미 프린스턴대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장, 서울대·홍익대 박물관장을 지낸, 이 분야의 석학이다. 

그가 선정한 4대 화가는 솔거, 이녕, 안견, 정선이다. 솔거는 8세기 통일신라, 이녕은 12세기 고려, 안견은 15세기 조선 초기, 정선은 18세기 조선 후기 인물이다. 현존하는 그림이 한 점도 없는 솔거를 발탁한 기준은 뭘까. 안 교수는 이와 관련해 ▷삼국사기에 올라 있는 유일한 화가 ▷신이 그린 것 같은 신화(神畵) ▷1세대 연구자로서 짊어져야 할 책무 등 세 가지를 들었다. 솔거의 자료만큼이나 선정 근거는 미약하지만 그래도 이 전설적인 인물에 대한 전문가의 해석이 궁금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솔거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솔거는 신라 사람이다. 출신이 한미하여 그 족계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일찍이 황룡사의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나무의 동체와 껍질, 가지와 잎의 구부러진 모습 등을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 등의 새들이 이따금 보고 날아들다 부딪쳐서 떨어지곤 했다. 세월이 오래 돼 색이 어두워지자 절의 스님이 단청으로 고쳐 그렸는데 까마귀와 참새 등의 새들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또한 경주의 분황사 관음보살상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도 모두 그의 필적인데 세상에서는 신화(神畵)라고 전해진다”.

솔거는 한때 중국 사람이고, 스님이며 노송도는 채색화라는 설이 분분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동사유고’(권종상), ‘지봉유설’(이수광), ‘고환당집’(강위), ‘근역서화징’(오세창) 등 솔거를 언급한 고서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솔거는 통일신라 경덕왕대(742~765) 중엽의 화가로서 스님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도화서 격인 전채서 즉, 채전에 속한 ‘대나마’(大奈麻·신라의 17등급 중 10등급에 포함)이고 전채서의 최고 직책이었던 감(監)을 맡아 활동했다. 일반 회화와 불교 회화를 다 잘 그렸고 산수화와 인물화를 겸장했다. 솔거의 산수화는 청·녹·갈·적색을 쓴 채색화로서 중국의 이사훈·이소도 부자에 의해 발전한 청록산수화풍이었다. 노송도는 청록산수화로서 황룡사 본금당인 중금당의 동쪽 외벽에 그려졌을 것이다. 노성은 여러 그루가 아닌 한 그루만으로 화면의 중앙에 자리해 가지들이 좌우로 넓게 퍼진 균형 잡힌 모습이 되도록 그려졌을 것이다.

흥국사의 극락 구품도나 황룡사의 노송도 모두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사찰에 그린 그림이란 공통점이 있다. 흥국사는 김홍도 그림이 있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한다. 새해부터 신라 최대의 사찰 황룡사도 보고 싶고, 신화라는 말까지 듣는 ‘노송도’도 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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