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경로당 용도변경 쉽게 해 물의, 개정안 입법예고…대한노인회 강력 반발
국토부, 경로당 용도변경 쉽게 해 물의, 개정안 입법예고…대한노인회 강력 반발
  • 조종도 기자
  • 승인 2020.07.03 13:33
  • 호수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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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과반수 찬성으로 경로당 없앨 수 있는 길 열어

서울연합회 “세대 간 마찰 부추겨… 입법 저지 투쟁”

[백세시대=조종도기자] 국토교통부가 일정 규모 아파트 단지 내 설치가 의무화된 경로당을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완전히 없애고 다른 시설로 쉽게 용도변경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 코앞에 닥친 ‘1000만 노인시대’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6월 11일 경로당, 어린이집, 놀이터, 운동시설, 작은 도서관 등 공동주택 단지 내 필수시설의 용도변경을 허용하고 입주자들의 동의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7월 21일까지 입법예고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 15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에 의무적으로 설치된 경로당을 어린이집을 넓히거나 주민운동시설 등을 확대하기 위해 없앨 수 있다. 필수시설 이외에도 다른 주민편의시설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현재 대통령령인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55조는 아파트 규모별로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시설을 정해 놓고 있다. 150세대 이상에는 경로당과 어린이놀이터를, 300세대 이상에는 여기에 어린이집을 추가하고, 500세대 이상에는 주민운동시설, 작은도서관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번 개정안이 확정돼 시행될 경우 이러한 규정은 사문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민공동시설 중 필수시설을 다른 시설로 용도 변경하려면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면서 “경로당에 나오는 노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경로당을 아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건축위원회 심의는 요식행위에 그칠 우려가 크다. 주민공동시설에 대해 아파트 주민들의 동의를 거친 사안을 시장·군수·구청장 관할 하에 있는 건축위원회가 기각시킬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개정안은 주민공동시설 용도변경을 위한 주민 동의 요건도 ‘전체 입주자 등(소유자와 사용자)의 2/3 이상 동의에서 1/2 이상으로 완화하고 있다. 이전보다 용도변경이 훨씬 쉬워진 것이다.

대한노인회는 이런 국토부의 개정안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비판했다. 

대한노인회 서울연합회(회장 김성헌)는 7월 1일 국토부에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와 관련하여, 주민공동시설 중 필수시설인 ‘경로당의 용도변경 허용 확대’에 심각히 우려한다”면서 의견서를 냈다. 서울연합회는 이와 함께 “이번 사태에 전국 820만 노인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입법저지를 위해 분연히 싸우겠다”고 밝혔다.

“경로당 활성화에 역행하는 조치”

서울연합회는 의견서에서 “경로당 용도변경 허용 확대는 고령사회 노인여가복지시설인 경로당 활성화를 되레 외면하는 조치”라면서 “이는 공동주택시설 내 세대 간 심각한 마찰을 부를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연합회는 또한 “재가노인의 여가공간이자 쉼터인 경로당이 용도변경 되면 요양원 등 시설복지 수요만 폭증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노인회 중앙회도 금명 입장 표명을 내기로 했다. 중앙회 관계자는 “경로당은 다른 시설들과는 달리 전통고유의 사랑방문화를 계승하면서 존치돼 온, 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있는 자랑스런 유산이다. 이런 특별한 노인복지 시설을 주민의 사정에 따라 다른 시설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인들 요양시설로 밀려날 우려

고광선 동방문화대학원 실버복지학과주임교수(대한노인회 전국사무처장협의회 회장)는 “경로당 노인들은 사회적 약자인데 아파트주민회의 결의로 경로당을 없앨 수 있도록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한다면 힘없는 노인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고광선 교수는 “현재 서울에만 10평(33㎡) 미만의 경로당이 500개에 이를 만큼 열악한 실정이다. 2025년으로 예상되는 초고령사회(노인인구 비율 20% 이상)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경로당의 시설기준을 강화하고 프로그램실이나 입식설비 설치 등을 의무화해야 한다”면서 “이번 개정안에서 경로당을 다른 시설로 바꿀 수 있는 조항은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로당은 노인복지가 취약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노인들이 그나마 마음 놓고 숨쉴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경로당은 노인들이 소일하는 단순한 여가시설이 아니다. 건강한 노인이 어려움을 겪는 노인을 케어하는 복지시설이자, 재능나눔과 노인일자리의 현장이다. 취미교실과 각종 교육이 이뤄지는 평생학습의 장이기도 하다.

<strong>이런 활동과 웃음 사라진다면…</strong> 국토부가 입법예고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은 아파트단지 경로당의 용도변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노인사회의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은 충북 충주시의 한 경로당에서 회원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행복리더와 함께 스트레칭 동작을 하고 있는 모습.
이런 활동과 웃음 사라진다면… 국토부가 입법예고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은 아파트단지 경로당의 용도변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노인사회의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은 충북 충주시의 한 경로당에서 회원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행복리더와 함께 스트레칭 동작을 하고 있는 모습.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지난 2월부터 경로당 문이 닫히면서 경로당에 갈 수 없게 되자 어르신들은 “하루하루가 너무 답답하다. 하루 빨리 경로당을 열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영희 한국성서대학교 교수(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회장)는 “오늘날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경로당은 불필요한 공간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노인복지시설인 경로당을 다른 용도로 변경하는 것 보다, 어르신들이 우선적으로 이용하면서 지역주민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세대교류 공간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또 “문재인 정부는 포용국가를 표방하면서 커뮤니티 케어 활성화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면서 “지역사회 내 노인이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경로당이 노인복지 실현의 주요 거점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종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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