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르노빌 1986’, 최악의 원전사고 막으려 했던 숨은 영웅들의 희생
영화 ‘체르노빌 1986’, 최악의 원전사고 막으려 했던 숨은 영웅들의 희생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7.02 15:51
  • 호수 77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 작품은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배경으로 가상 인물의 이야기를 더해 사고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이번 작품은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배경으로 가상 인물의 이야기를 더해 사고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체르노빌 원전 폭발 다룬 극영화… 소방관 가족을 통해 참혹함 그려

무능한 소련 정부 비판하면서 더 큰 피해 막으려 헌신한 사람들 추모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퇴직을 앞둔 체르노빌 원자로 6소방대 경계대장 ‘알렉세이’. 그는 미용실에 갔다가 우연히 10년 전에 헤어진 연인 ‘올가’를 만나게 된다. 알렉세이는 10살 된 그의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던 올가에게 여전히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두 사람은 재결합한다. 알렉세이는 그간 돌봐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아들에게 카메라를 선물한다. 그의 아들은 카메라를 들고 마을을 지탱하는 ‘상징’을 촬영하러 간다. 그리고 그때 알렉세이 가족의 미래를 산산조각 내버리는 사건이 카메라에 담긴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만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배경으로 방사능과 원전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영화 ‘체르노빌 1986’이 6월 28일 개봉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재로 평가받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당시의 충격적인 현실과 목숨을 내걸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가상의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그들의 사연을 통해 실제 사건의 참혹함을 부각시켰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4호기가 폭발한 것을 말한다. 사고 당시 체르노빌 원전은 총 4기의 원자로를 운용 중이었고, 2기의 원자로를 추가로 건설하고 있었다. 

체르노빌 4호기는 발전소 정지 시 터빈의 관성을 이용한 전기 공급을 시험하던 중 무리한 시험으로 제어 불능에 빠졌다. 결국 원자로가 붕괴되고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10배가 넘는 방사성 물질은 인접 국가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특히 체르노빌 원전은 통상의 원전과 달리 격납건물(사고 시 방사성물질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건물)이 없어 사고의 여파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초기 수습에 동원된 소방대원을 비롯해 28명이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했다.

방사능 피폭자만 60만명 추산

또 미숙하고 뒤늦은 대처로 36시간이 지나서야 인근 프리아트 주민 5만여명이 대피했고 1년 만에 사고의 직간접 영향으로 2만5000여명이 사망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고 20주년을 맞아 2006년 열린 체르노빌 포럼에서 유엔은 방사선 피폭자 수를 60만여명으루 추정했고 이중 약 4000명이 암에 걸렸다고 보고했다.

알렉세이와 올가의 재회를 다룬 작품의 도입부는 1980년대 소련을 배경으로 한 멜로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들이 원전사고를 촬영하는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폭발로 인한 화재는 점점 커지고 마을 주민들은 대피 명령을 받아 이동한다. 가족을 데리고 마을을 벗어나던 알렉세이는 긴급출동하는 소방차를 보고 자진해서 몸을 싣는다. 알렉세이는 “불에서 역청(瀝靑)이 보인다”는 동료의 말에 심상치 않음을 느끼다. 

예상대로 상황은 점점 악화돼 원자로 노심(원자로의 핵심부로, 연료의 원자핵이 분열되고 에너지를 방출하는 곳)이 노출될 위험에 처하자 긴급 대책회의가 소집된다. 원자로 내부를 잘 알고 있는 알렉세이는 회의에 참석하고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 방사능 오염수 속에 들어가 점점 끓어오르는 냉각수를 흘려보내야 한다는 결론을 낸다. 사고 대책반이 꾸려지고 알렉세이는 피해를 막기 위해 해체 작업팀에 합류한다. 그리고 다른 대원들과 함께 방사능 오염수가 가득 찬 원자로에 뛰어든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큰 가족애로 희생 선택

작품은 당시 무능했던 소련의 사고 수습과정을 비판하면서도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공포를 무릅쓰고 희생한 이름 모를 영웅들을 추모한다. 알렉세이로 대표되는 영웅들은 살아돌아 올 수 없다는 사실에 잠시 머뭇거린다. 그러면서도 가족과 시민들을 위해,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었고 이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작품은 비록 허구의 인물을 내세웠지만 당시 소방관, 엔지니어들을 인터뷰하고 수천개의 기사와 책 등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당시 배경을 완벽히 재현한다. 또한 현재도 가동 중인 쿠르스크 원전에서 촬영해 사실성을 높였다. 또 배우들 역시 영화의 백미인 오염수 촬영을 위해 몇 달 동안 다이버 훈련을 받는 등 완성도를 높였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