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집으로의원’ 방문진료 동행 취재기… 내 집에서 편안하게 진료 받는다
[창간 기획] ‘집으로의원’ 방문진료 동행 취재기… 내 집에서 편안하게 진료 받는다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3.04.10 11:09
  • 호수 8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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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집으로의원 원장이 방문진료를 통해 환자의 허리와 관절 등을 살피며 운동 능력을 파악한 후 재활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주형 집으로의원 원장이 방문진료를 통해 환자의 허리와 관절 등을 살피며 운동 능력을 파악한 후 재활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환자상태 상세히 보고 진찰해 처치… 휴대용프린터로 처방전도 ‘척척’

거동 불편한 노인·장애인 등이 대상… 수가 현실화와 지자체 홍보 필요

[백세시대=배지영 기자] #. 김홍란(76, 가명) 어르신은 얼마 전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넘어지면서 옆에 있던 실내자전거에 옆구리를 부딪쳐 고통을 호소했다. 보호자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거니 지켜봤지만 정신을 잃고 헛소리까지 하게 되자 근처에 있던 방문진료 의원에 응급으로 왕진을 요청했다. 차가 없던 보호자가 병원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 위해서는 사설 구급차나 택시를 타야 하고, 병원에 가서도 당장 처치 받을 수 없어 대기만 몇 시간 해야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왕진 가방을 든 의사는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왕진 의사들이 아픈 환자의 집으로 당연한 것처럼 발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응급의료체계가 정착되고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왕진수요는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이에 정부는 방문진료를 허용하는 ‘일차의료 왕진수가 시범사업’과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방문진료는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장 큰 원인은 수익성이 낮고 미비한 방문진료 시스템으로 인한 고충, 환자들의 집으로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이같은 수고를 마다하고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이들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분당시에 위치한 ‘집으로의원’이다. 이에 기자는 백세시대 창간 17주년을 맞아 지난 3월 말 김주형 원장, 김지영 간호부장과 함께 왕진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의사가 직접 환자 찾아가는 ‘방문진료’

아주대병원 외과 교수 출신인 김주형 원장은 지난 2월 분당 지역 최초로 방문진료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의 문을 열었다. 현재 전국에 외래진료 없이 방문진료만 전문으로 하는 의원은 10여곳에 불과하다. 

그가 방문진료에 뛰어든 계기는 간단하다. 과거 요양병원을 운영할 당시 환자들이 병원보다 집에서 병세가 호전되는 경우를 많이 봐서다.

“요양병원에 있다 보면 환자들이 병원보다 집에 있을 때 호전 가능성을 보이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런데도 환자들이 집에 못 가는 이유는 의료진의 진료를 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지요. 누구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서 이를 해결하고 싶어 방문진료 의원을 개설하게 됐습니다.”

현재 의료법상 왕진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예외는 있다.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하는 경우 ▲국가나 지자체의 장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해 요청하는 경우 등이 그렇다. 

지난 2월 개원한 집으로의원은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기관으로, 지체·뇌병변 장애 등 중증장애인에게 만성질환, 장애관리 등 지속적인 건강관리 서비스를 연 18회 방문진료를 통해 제공한다. 

조만간 ‘일차의료 왕진수가 시범사업’과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도 신청해 제도권에 들어간다는 게 김 원장의 목표다. 시범사업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야 방문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주형 원장은 “일반진료의 경우에는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경우만 가능하고 별도 수가도 따로 책정된 게 없다 보니 교통비, 실비 위주의 근거로 진료비를 5만원 정도로 책정해 받고 있다”며 “한번 찾아갈 때마다 30분~1시간 정도 꼼꼼히 진찰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환자분들이 비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왕진 가방(왼쪽)과 휴대용 초음파기.
왕진 가방(왼쪽)과 휴대용 초음파기.

◇환자와 보호자 만족도 높아

실제로 이날 방문진료를 한 이정후(83, 가명) 어르신도 폐렴 증세가 심해져 보호자가 환자를 모시고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남은 병상이 없어 휠체어에 앉아 8시간 정도 대기한 경우였다.

이후 영상검사를 통해 폐렴증상을 확인했지만 당장 입원할 병상이 없어 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퇴원 후 외래진료 대기를 위해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게 보호자의 설명이다. 

“아버지(환자)가 병원을 왕복하고 대기하는 시간으로 인해 많이 지쳐있고 기력이 쇠해져서 방문진료가 가능한 곳을 찾아보게 됐어요. 그러다 집 근처에 방문진료가 가능한 집으로의원이 있어 진료를 요청하게 됐습니다.”

이날 김 원장은 환자를 진찰하기 전 보호자와의 면담을 통해 병력 상담과 복용 중인 약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동시에 김지영 간호부장은 환자의 혈압과 혈당, 맥박, 호흡 등을 파악했다. 이후 김 원장은 폐렴 증상 치료를 위해 항생제 투여와 함께 수액 치료를 시행했다. 

김 원장은 “일반진료는 환자의 얼굴만 보고 3~5분 정도 진료하면 끝이지만 방문진료는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 외에도 현재 살고있는 집안의 환경, 간병인 유무, 보호자들의 환자에 대한 생각과 성격 등을 종합해서 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자의 상태나 집안 환경만 봐도 얼마나 환자 케어가 잘 돼 있는지 보인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관리를 잘하는 보호자가 있으면 환자 상태도 좋고, 집안 환경이 좋지 않으면 피부, 건강상태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치료가 끝난 후 김 원장은 약 처방을 위해 조그마한 프린터기를 꺼냈다. 현장에서 바로 처방하기 위해 김 원장이 미국에서 직접 구입한 휴대용 프린터기다. 더불어 정확한 진단을 위해 휴대용 초음파 기기 또한 미국에서 공수했다. 

이밖에도 식이생활과 중복된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어르신의 보호자는 “사설 구급차만 불러도 왕복 17만원의 비용이 드는데 응급실에서 기다리지 않고 가만히 집에만 있어도 의사가 와서 진료까지 해주니 왜 진작 이러한 제도를 몰랐을까 후회된다”고 전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방문진료’

이러한 방문진료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방문진료에 대한 모호한 지침과 함께 낮은 수가, 시범사업에 대한 홍보 부족 등이 그 이유다. 왕진을 할 수 있는 의사들의 참여를 늘려야 하는데 지자체조차 사업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노인들의 독감백신과 폐렴구균 접종 또한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는 방문진료를 통해 이뤄지게 해야 하는데 부작용이 일어났을 때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면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보건소, 의원까지 가서 예방백신을 접종하라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건세 대한재택의료학회 회장도 “재택의료와 관련해 현재 진행되는 대다수 시범사업 모델을 보면 의사가 방문하거나 간호사가 방문하면 몇 만원 정도의 수가를 가산하는 방식”이라며 “이렇게 일부 행위에 찔끔찔끔 수가를 더 얹어주는 방식으로는 재택의료가 절대 자리를 잡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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