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서 만난 인연 수기, 장려상 김정부 충남 서산시 읍내22통경로당 회장
경로당서 만난 인연 수기, 장려상 김정부 충남 서산시 읍내22통경로당 회장
  • 김정부 충남 서산시 읍내22통경로당 회장
  • 승인 2023.06.12 15:44
  • 호수 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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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떡이 걸려 눈동자 돌아간 90대 어르신 극적 구조

10여년간 총무·회장 지내며 회원들과 특별한 추억

각별히 돌보던 치매 회원 시설 입소날 배웅하다 눈물 

김정부 충남 서산시 읍내22통경로당 회장 

충남 서산시 양류정1로 18번지에 위치한 읍내22통경로당은 여성 회원 37명과 남성 회원 5명이 친구처럼 더불어 지내고 있다. 윷놀이, 고스톱 등을 함께하고, 서로 보듬고 배려하며, 경로당을 지원해주는 정부와 지자체에 고마워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2005년 서산시청에서 정년퇴직하고 노후를 보내던 중 주변 어르신들의 권유로 2010년 경로당에 입회했다. 이후 경로당 회장과 분회장을 8년간 겸직했고, 다시 경로당 총무로 2년간 지내다 2021년부터 재차 회장을 맡아 부모님과 같은 어르신들이 노후를 활기차게 보내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있다.

회원들이 경로당에서만큼은 건강하게 지내도록 돕고, 재미있게 지내게 운영하는 것이 필자의 소망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오전 7시, 봄가을엔 10시에 나와 보일러를 켜는 등 365일 대부분을 경로당 뒷바라지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평생 잊지 못할 다양한 인연과 마주하기도 했다.

2017년에 있었던 일이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몸이 한두 곳 아파 이 병원 저 병원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염려하는 병이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신조차도 못 알아보게 되는 치매이다. 당시 국가와 지자체, 보건소 등은 치매 예방을 중요한 정책의 목표로 삼고 여러 시책을 폈는데 필자의 경로당에서도 이에 동참했다. 

당시 경로당에 ‘치매예방홍보센터’ 현판을 건 후 치매 알리기에 나섰다. 필자가 만든 치매예방 홍보댄스를 경로당 회원 중 기동력이 있는 20여명에게 가르친 후 지역 타 경로당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쳤다. 또 치매예방 전단지 5000매를 인쇄한 후 각종 강연장과 행사장, 터미널, 시장, 공원 등을 다니며 배부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참한 회원들이 “회장을 잘 만나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보람있는 일을 하게 됐다”며 기뻐했다.

또한 회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치매예방에 도움이 되는 인지훈련을 비롯해 그림그리기, 댄스 등 각종 프로그램도 지원받고 있고 필자가 강사로 나서 하모니카도 지도하고 있다. 

그러던 중 2017년 10월 경로당에서 잔치를 벌이는데 90대 어르신이 인절미를 드시다 갑자기 몸부림을 쳤다. 떡이 목에 걸려 고통스럽게 쓰러졌고 눈동자가 반 이상 돌아갔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필자는 이를 발견하고 재빨리 어르신의 등뒤로 가 두손으로 깍지를 끼고 배를 힘껏 잡아당기는 하임리히법을 시도했다. 다행히 떡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그 순간 어르신의 눈동자도 회복됐다. 다시 미소를 되찾은 어르신을 보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이후 어르신을 만나면 서로 껴안고 그날 그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10여년간 경로당에서 생활하며 가장 잊지못할 인연으로 기억되고 있다.

2018년에는 복권과 관련된 인연도 있었다. 치매예방홍보센터 1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는데  행사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기다림과 희망을 가지는 자체가 즐거움’이라는 의미로 1000원짜리 복권 50장을 나눠줬다. 또 아코디언 동호인들과 함께 연주를 하면서 만수무강을 비는 비나리 공연을 펼쳐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회원의 자녀 중 한 명이 “당첨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자식된 저도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지 못했는데 작은 즐거움을 준 것에 대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며 10만원을 후원했다. 

치매 회원과의 일화도 떠오른다. 치매 초기인 회원이 있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보살폈다. 먼저 신발장에 어르신의 이름을 써붙여 본인 신발은 그곳에 벗어 놓도록 했고, 집에 가실 때는 스스로 찾아 신고 가도록 했다. 이때 필자 아내가 손을 잡고 배웅을 꼭 해드려 어르신이 안정감을 느끼도록 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어르신은 자식들에 이끌려 결국 시설에 입소하게 됐다. 당시 어르신이 코로나에 걸려 아무도 배웅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 필자는 입소하는 어르신의 손을 꼭잡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회장인 저를 몰라보고 “아저씨 고마워요”하며 웃으시는 안타까운 어르신의 모습에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3년간의 아픈 시간을 보낸 경로당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매월 22일 오전에 개최하는 월례회의 때는 장수혈인 족삼리혈(무릎 아래 10cm)을 100번씩 두드리며 서로의 건강을 기원한다. 또 신유의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 노래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회원 모두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회원들과 경로당의 소중함을 상기시켜주는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백세시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서로 보듬고 배려하는, 가족 같은 경로당을 만들어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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