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오이소박이냉국수’ 맛 같은 재회
[백세시대 / 세상읽기] ‘오이소박이냉국수’ 맛 같은 재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6.26 11:17
  • 호수 8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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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재회의 반가움과 기쁨이 평범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당이든. 이번호 세상읽기는 20여년 만에 다시 찾은 한 음식점 얘기를 해볼까 한다. 

주말에 서울 양평 간 6번 국도는 ‘교통지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차가 많이 밀리는 곳이다. 토·일요일엔 절대 교외로 나가지 않는다는 신조를 어기고 최근에 늦은 아침에 승용차를 몰고 서대문 집을 나와 내부순환로를 탔다. 다행히 차가 덜 막혀 한 시간 30여분 걸려 덕소 삼패사거리에 닿았다.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삼패’란 단어가 궁금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이 지역이 조선 시대에 뼈대 있는 집안의 문신들이 대거 배출됐던 명당이었다. 

청풍 김씨 문의공(文毅公)파 김식·김육·김좌명의 신도비 3기가 있어 삼패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삼패사거리를 지나 오른편으로 한강을 바라보며 경강로를 따라 팔당터널 방향으로 달렸다. 앞차들이 서행을 하더니 도로가 바로 주차장으로 변했다. 길가에 즐비한 음식점과 카페, 베이커리에 들고나는 차들로 교통 흐름이 막힌 것이다. 세련된 디자인의 건물들을 쳐다보던 중 한 음식점의 간판이 기억 속 한 단어와 일치했다. ‘개성집’. 만둣국·칼국수·오이소박이냉국수·녹두전 등 메뉴도 익숙했다. “혹시 그 때 그 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 전 남양주 조안면 송촌리의 왕복 2차선 지방도를 달리다 우연히 찾아들어간 음식점이 개성집이었다. 순박해 보이는 여주인(김정임·66)이 나와 친절하게 주차를 봐주고 방으로 안내해줘 호감이 갔다. 식당 자체가 주인 가족이 거주하는 살림집으로 내 집 안방 같은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음식은 개성 출신의 시어머니가 손수 빚은 만두로 끓인 만둣국과 살얼음을 듬뿍 담은 오이소박이냉국수였다. 개성만두의 특유의 향기와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고, 소금에 숙성된 배추 속살의 백김치가 진한 사골국물을 상큼하게 희석시켜주었다. 그 맛에 이끌려 만두가 먹고 싶을 때마다 이 집을 찾곤 했다. 그리고 당시 기자가 몸담았던 언론매체에 이 식당을 ‘정겨운 맛집’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개성집이 전국적인 유명 음식점으로 회자됐다. 김영삼(YS) 대통령 덕분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YS는 식당 뒤편에 있는 운길산(610.2m)에 올랐다 내려오던 길에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가 음식 맛에 반해 자주 찾곤 했다. 대통령의 단골음식점은 유명세를 타기 마련인데 이 집은 거기에 맛도 더해져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여주인은 당시 “(김 대통령이)저희 집이 편하다시며 오시면 3시간 이상씩 머물다 가시곤 했다”며 대통령과의 인연을 말했다. 이어 “(김 대통령이)등산 갔다 오시면 저희 집에서 옷을 갈아입으시곤 했는데 오래된 내복이었다”며 “매년 오실 때 보면 같은 내복을 입고 계실 정도로 검소한 분”이었다고 덧붙였다. 

YS는 2000년 봄에 ‘호연지기’(浩然之氣)란 휘호도 써주었고, 여주인 부부를 상도동 집으로 초대하기까지 했다.  

“역시 그 집일까”하는 궁금증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식당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벽에 걸어놓은 사진액자를 본 순간 속으로 “빙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여주인이 김영삼·손명순 내외와 함께 식당 앞에서 찍은 사진이 YS의 휘호 액자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 때보다 오히려 젊고 신수도 좋아 보이는 여주인도 바로 기자를 알아보고 환한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기자는 오이소박이냉국수 맛 같은 짜릿한 재회의 기쁨을 느끼며 만둣국 한 그릇을 가볍게 비웠다. 그리고 반가움의 정표로 내어준 푸짐한 도토리묵 한 접시도….  

(개성집: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경강로 876 ☎031-576-6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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