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노인복지관의 경로식당 간판을 떼자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노인복지관의 경로식당 간판을 떼자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3.06.26 11:28
  • 호수 8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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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식당은 밥만 먹는 곳 아닌

교제와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할 필요

위치도 지하서 상층으로 올리고

이름에 적극적인 의미 담았으면

김동배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90세 되신 장모님을 모시고 가끔 집 근처 노인복지관 경로식당에 간다. 나도 회원증을 끊어 같이 밥을 먹는다. 노인들에게 적합한 메뉴이고 봉사자들도 친절하다. 

하루에 한 끼라도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은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4000원에 이런 영양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노인복지 제도이다. 점심 전후로 학습과 사회 활동에 참여하니 경로식당은 노인복지관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늘 아쉬움이 있다. 식반에 음식을 받아 당연한 듯 혹은 미안한 듯 혼자 열심히 밥 먹고 나가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만이 아니라 다른 노인복지관도 마찬가지인데, 복지관 측은 이 식당 공간의 기본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 식당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노인복지의 많은 부분을 개선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식당은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노인복지관 식당은 협소하고 분위기가 우중충하여 오래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시내 곳곳에 있는 노숙자를 위한 무료식당의 분위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남녀를 불문하고 노인 특유의 거무죽죽하고 희끄무레한 옷을 걸치고 와서 그저 한 끼 때우듯 먹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르신들이 이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나”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벽과 바닥, 식탁과 의자, 벽시계와 선풍기, 어느 것 하나 예술적인 디자인과 관계가 없다.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대화를 유도하는 아이디어를 창안해 낼 수는 없을까? 내가 이용하는 식당은 지하 1층에 위치해 있지만 한 쪽 벽면은 바깥이 좀 보이는 유리로 되어 있어서 다소 숨통이 트이긴 하다. 좁은 공간이지만 야외에서 식사하는 듯 넓게 보이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식탁 배치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둘째, 식당은 기본적으로 교제의 장소이어야 한다. 지금은 밥 먹는 곳 이외의 기능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복지관 전체 공간이 넓지 않은데 사실 여기에서 식사만 하기엔 아깝다. 음식 냄새도 빨리 빼고 쾌적한 분위기를 만든다면 얼마든지 이용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식사 시간 이외엔 적당히 칸막이를 해서 대화 공간을 만들어 다과를 즐길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특정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드레스코드를 정해 이를 준수하는 사람에겐 보너스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미리 예고해 어느 화요일 노랑색이 들어간 옷을 입거나 악세사리를 달고 식당에 오는 분에겐 노랑 오렌지 하나를 드리는 것이다. 

처음엔 그런 드레스코드 개념을 몰라 무시하거나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그것이 복지관 문화로 자리 잡으면 노인들이 외모에도 신경을 쓰고 색깔에 얽힌 대화도 나누게 되어 복지관이 좀 더 밝고 활기차게 돌아가지 않을까?  

셋째, 만약 복지관을 리모델링 한다면 식당은 전망 좋고 환기도 잘 되는 상층부로 올린다. 우리나라 사회복지기관 운영자들은 전통적으로 식당은 낮에 몇 시간만 사용하는 공간이니 쓸모가 덜한 쪽에 만드는 데 모두 암묵적인 동의를 했던 것 같다. 

지하실은 음식 재료를 나르고 직원과 봉사자들이 들락거리는 데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결코 명랑하지 않고 음식 냄새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식당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그 위치는 건물에서 가장 밝고 편리한 곳으로 정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시니어센터(senior center)는 전국 동네마다 설치되어 있어서 지역 노인들의 건강과 독립적 생활을 보장하는 기초 노인복지기관인데 여기의 식당은 매우 쾌적한 공간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50~100명 정도가 따뜻한 점심(hot meals)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식당은 참여 노인들의 가장 사랑받는 공간이고 큰 규모의 모임은 다 여기서 한다. 참여하는 노인들은 마치 초대받은 곳에 가는 듯한 옷차림으로 나와 식사 시간 전부터 삼삼오오 모여 앉아 환담을 나눈다. 여성들은 화사한 옷을 차려입고 남성들도 원색의 재킷 차림으로 나와 분위기를 환하고 고급스럽게 만든다.

노인(종합)복지관은 전국에 330여개가 있으며 약 250만명의 노인회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국 노인복지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수행기관이다. 나는 노인복지관의 중심 역할은 역량강화(empowerment), 즉 노인이 꿈을 꾸고 그 꿈이 실현되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경로식당’이라는 이름이 마땅치 않다. 이것은 노인이 의존적이고 시혜 대상이 되는 이미지를 풍기는 단어이다. 노인복지관에서 ‘경로식당’이란 간판을 떼자. 내가 가는 복지관은 ‘채움마당’이라는 간판을 붙였는데 이는 배를 채운다는 뜻일 것이다. 

만약 간판을 바꾼다면 ‘만남마당’은 어떤가? 그리고 노인이 돌보고 있는 어린 손주를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다면 그야말로 다세대복지서비스기관으로 탈바꿈하면서 복지관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노인들의 위상이 한 단계 상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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