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대학 “배울 수 있어 좋다” vs “배울 게 별로 없다”
노인대학 “배울 수 있어 좋다” vs “배울 게 별로 없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7.10 09:08
  • 호수 8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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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대학을 대하는 신·구 노년층 시각차… 현행 유지냐 변화냐 갈림길
경기 김포시지회 부설 김포노인대학의 학생들이 운양동 육묘장에서 꽃심기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김포노인대학은 커리큘럼이 좋아 서로 가고싶어 경쟁하는 노인대학 중 하나다.
경기 김포시지회 부설 김포노인대학의 학생들이 운양동 육묘장에서 꽃심기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김포노인대학은 커리큘럼이 좋아 서로 가고싶어 경쟁하는 노인대학 중 하나다.

현 수강생 만족도 높지만 새 지식 욕구 강한 젊은 노인들은 외면

서울 노원구, 성서대와 손잡고 학점제 등 새로운 모델 시도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1. 조연옥(80) 어르신은 노인대학에 가는 수요일이 가장 즐겁다.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운 조 어르신은 노인회가 운영하는 노인대학에서 듣는 각종 강좌와 레크레이션을 통해 활력을 되찾았다. 조 어르신은 “곧 방학이 시작되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2. 서울에 거주하는 김문호(66) 씨는 올해 초 노인대학에 대해 알아보다 수강을 포기했다. 김 씨는 “제가 배울만한 게 없어서 동네 디지털배움터와 복지관에 다니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조 어르신과 김 씨의 사연은 현재 노인회가 운영하는 노인대학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노인대학은 길게는 수십 년간 운영하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어르신들이 원하는 커리큘럼을 제공해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다. 반면에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이 큰 6070 젊은 노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노인으로 속속 편입되는 베이비부머들(1955~1963년생)도 만족시킬 수 있게 노인대학도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노인대학은 대부분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된다. 국제 정세와 사회 변화에 대한 흐름을 알려주는 교양 강좌와 노래교실, 댄스교실 등 각종 여가 프로그램을 매주 1~2회 수강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또 어르신들에게 한 끼 식사도 제공한다. 대부분 수강료를 받지 않고 지자체 예산을 활용해 운영된다. 한 노인대학 관계자는 “입학비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무료로 수업과 식사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시스템은 기존 고령의 수강생들에게는 예산 대비 높은 만족도를 제공하지만 ‘배움’의 관점에서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제한된 예산도 걸림돌이다. 노인대학에 지원되는 예산은 대학별로 2000~4000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100명 내외로 수강하는 점을 고려하면 큰 금액은 아니다. 즉, 예산을 쪼개서 수업을 늘리기도 벅찬데다가 기존 수업을 악기 연주, 컴퓨터 활용 등 베이비부머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변경할 경우 기존 수강생의 관심도가 떨어져 선뜻 바꾸기도 어렵다. 

A지회 관계자는 “노인대학 프로그램이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새롭게 다가오지만 이제 60대가 된 젊은 노인들에게는 이미 경험한 식상한 것들이어서 관심이 적다”면서 “베이비부머들이 원하는 수업으로 채우면 기존 수강생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제한된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늘리는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노인회에서는 노인대학과 별개로 디지털배움터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추가로 마련해 젊은 노인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디지털배움터는 과기부가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 모두에게 디지털 역량 교육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전국의 주민센터, 노인회 등을 활용해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남 여수시지회(지회장 김명남)는 6월부터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각종 어플 설치, SNS, 유튜브 활용 교육을 진행하는데 사용하는 기종이 다른점을 고려해 1대 1로 진행해 만족도가 높다. 

여수시지회 관계자는 “당초 7월까지 진행 예정이었지만 교육 효과가 커 올 연말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진행하는 ‘60+교육센터’를 통해 교육을 시도한 적도 있다. 

속초시지회는 2019년 ‘60+교육센터’를 운영해 인생 이모작에 관심이 많은 베이비부머들을 위해 수산물가공 완제품 포장과정, 골프장 잔디관리, 수목관리 보조인력, 주차관리요원, 아파트 경비인력 등 총 10개 과정 교육을 진행했다. 당시 190명이 참여해 관련 직무 교육 및 현장 실습 등을 거쳐 취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다만 이 사업은 2021년을 끝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 노원구가 인근 대학교와 손을 잡고 보다 발전된 형태의 노인대학을 운영해 주목받고 있다. 

노원구는 7월 3일부터 만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노원어르신행복대학’ 시범 운영에 나섰다. 

한국성서대학교와 협약을 통해 심화과정과 집중과정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한다. 집중과정은 다양한 교육을 단기간(5일 코스)에 종합반으로 수강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우쿨렐레 음악교실, 팝송&영화로 배우는 영어, 내 손안의 디지털, 영양관리&베이킹 등 관심이 많은 과목을 9개 개설했다. 

심화과정은 디지털 정보화, 건강관리, 외국어 활용, 여가 활용 과정으로 구분해 총 10개의 과정이 단과반으로 개설된다. 개인정보보호 및 보이스 피싱 예방, 유튜버 과정, 생활 및 여행 영어, 토탈공예 등을   2시간씩 2~4회차 진행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기존 노인대학과 달리 학점제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수업 시간당 1학점씩 학점을 부여하고 일정 학점을 취득하면 수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수업별로 2시간씩 운영되는 우쿨렐레는 2학점, 1시간씩 진행되는 스마트폰 교육은 1학점을 부여하는 식이다. 

이와 함께 전문성도 강화했다. 건강관리 및 외국어 강좌는 대학교수가 출강해 양질의 수업을 제공한다. 노원구 관계자는 “시범운영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인원수·과목 등을 늘리고, 역사·철학 등 인문학, 검정고시 강좌 등 어르신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노인회에서도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대학교와 손잡고 평생교육 형태로 운영하는 등 노인대학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광선 서울연합회장은 “현재 노인대학 시설 기준이 미비해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강사진들 또한 일정 역량을 갖춘 이들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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