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이미 낳은 아이라도 잘 지켜내자 / 엄을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이미 낳은 아이라도 잘 지켜내자 / 엄을순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23.07.17 11:04
  • 호수 8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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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미국 살던 딸 친정에 와서 순산

아기 두 살 때까지 있기로 했는데

소아과 찾느라 진땀 빼곤 돌아가

갖가지 출산 장려정책이 무색

소아청소년과 의사부터 확보를

요즘은 아기들이 아파도 마땅하게 갈 응급병원이 없단다. 아기들은 과거 병력이 없다. 선천적인 병인지 어떤 상황인지 또 순식간에 어떻게 나빠질지 부모조차 모른다. 모조리 응급 상황인 게다.

급성 폐쇄성 후두염으로 밤새 응급차를 타고 소아병원을 찾아 헤매던 5살짜리 아이. 16통의 전화 통화 끝에 한 병원에 연결은 되었지만 ‘진료는 가능하나 입원 여건은 안됨’이라서 치료만 받고 집에 돌아갔다가 다음날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 넓은 서울 안에 그 아이 한 명 입원시켜 치료해 줄 병원과 의사가 한 곳도 없을 수가 있을까? 큰일이다. 소아청소년과 선생님 찾기가 이 정도라면 ‘애는 내가 키워주마’했던 딸과의 약속은 당장 취소해야겠다.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2년 전, 둘째 딸이 해산을 한 달도 안 남긴 채 남산만한 배로 세 살배기 딸 손목을 잡고는 내 곁에 왔다. 무서운 코로나 상황에 굳이 엄마 옆에서 몸을 풀고 싶단다.

코로나 검사를 열 번도 더 하고 시골 안채와 별채를 들락거리며 지냈다. 앉았다 일어나려면 옆 사람이 공구르기를 해줘야 겨우 일어나 앉을 정도의 몸. 기특하게도 그 몸을 가지고 힘든 격리 시간을 잘도 견디어 냈고 한 달 후 고맙게도 순산을 했다. 

그런데 아기가 두 살 될 때까지 맡겨 키우기로 했던 나와의 약속을 깨고 아기가 백일이 지나자마자 홀딱 데리고 가버렸다. 딸의 맘이 바뀐 이유는 있다.

낳은 지 한 달이나 됐을까. 갑자기 울고 열나고 목도 쉬고 젖도 안 먹는다. 그때 정수리를 만져보던 남편이 아기 정수리가 함몰된 것 같단다. 그 순간 난 숨이 멈춰버렸다. 집 근처에 소아병원도 없다. 정신을 차려 사방에 전화를 돌렸다. 

한의과, 정신과, 피부과, 그리고 성형외과까지. 의사로 입력돼 있는 번호는 다 돌렸다. 상태를 알리고 처방을 물어보니 모두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찾아가란 말뿐이다. 어디 있느냐 물으니 근처에는 없단다.

결국 사돈이 아는 성형외과 건물에 있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와 영상통화를 했다. 수분부족인 것 같으니 좀 지켜보란다. 여차하면 한밤중이라도 애를 둘러업고 가리라는 허락까지 받은 다음에야 숨을 돌렸다.

이 사건 후 할머니 육아는 물거품이 됐다. 결국 ‘아이가 좀 크면 데려올 터이니 그때 할머니 육아를 해보시라’란 말을 건네며 딸내미는 두 식구로 왔다가 세 식구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 갔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간다. 해마다 의사는 점점 더 많이 쏟아져 나온다는데 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이리 귀한 걸까. 부족한 건 의사 수가 아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였다.

저출산과 의료비 저수가 문제로 ‘소아청소년과’는 의사사회에서 이미 기피하는 과가 되어있어서, 해마다 줄어 2019년 80%에서 올해 지원율은 16.6%로 떨어져 전국적으로 33명만이 지원 했단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만나기가 지금도 힘든데 앞으로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저출산으로 환자는 줄어 수입도 적지, 응급 상황도 많으니 맘 편히 쉬지도 못하지, 축적된 데이터 부족으로 의료분쟁도 제일 많지. 남들과 똑같이 죽어라 공부했는데 수입은 적고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없으니 늘 긴장해야 되고, 거기다가 의료 사고와 분쟁까지 많다면…. 

아이가 미치도록 좋아 의사 공부를 시작을 한 경우라면 모를까. 기피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이럴 땐 국가가 나서야 되는 것 아닌가. 

첫째, 둘째, 셋째 줄줄이 아기를 낳으면 몇천만원씩 안기고, 다둥이 부모에겐 주택 청약 혜택을 주고, 출산 시에는 축하금과 장려금까지. 이제껏 출산 장려를 위해 엄청난 나랏돈을 풀어 안겨줬는데도 아직도 출산율엔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돈이 해결책이 아니란 것이다. 출산과 동시에 아이 하나 굶기지 않을 만큼 충분히 돈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몰래 낳아 암매장하고 굶기다가 죽으면 텃밭에 묻고, 재활용 봉투에 넣어 유기하고, 아파서 앓다가 죽으면 냉동고에 넣는다. 엽기 패밀리가 따로 없다. 

이유는 준비가 되지 않은 부모 탓이란다. 그렇다면 충분히 부모가 될 준비를 해본다 가정하자. 아이가 아파도 갈 병원이 없어 걱정, 일할 때 맡길 사람 없는 것도 걱정, 사교육도 걱정. 나라에서 해주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키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결국에는 ‘에라 포기하자’의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해 출산하면, 학대하고 방임하며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하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면 책임감이 버거워 출산을 포기하고.

그렇다면 지금 시행 중인 출산 장려정책에 ‘소아청소년과 의사 인센티브’를 함께 묶어 시행하면 어떨까. 아이를 낳는 것과 낳은 아기를 건강하게 치료하는 건 같은 일이다. 

소아청소년과 지망자에게 인센티브도 주고, 높은 의료수가, 주택 청약, 군대 혜택 등 출산을 위해 줬던 것들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소아청소년과를 살려내야 한다. 저출산인데 이미 낳은 아이라도 잘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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