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 44회
회춘 44회
  • 서진모
  • 승인 2009.08.19 13:05
  • 호수 18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닥터 장준식은 이튿날 오후 비행기로 제주도를 향했다. 아, 제주도 여행! 이게 얼마만인가….  지난날 아내와 제주도 여행을 한지 어느새 10여년이 넘은 듯 싶다. 그동안 돈벌이에만 매달려 살아온 남자 장준식은 생각에 잠긴다.

그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참 젊었었다. 왜냐하면 그때 내 아내와 나는 정력이 넘쳤고 우리는 바다가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서 평소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부부관계의 황홀함과 뜨거움을 만끽했던 기억이 오늘따라 불현듯 회상이 되어온다.

그랬던 내 아내는 외동딸 시라와 나를 남겨두고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 여자는 평소에는 요조숙녀였으나 잠자리에서만은 정말 대단한 열정을 뿜어내는 육욕의 화신이었고 때로는 광녀와 같이 돌변했다.

그때 자신의 아내가 제주호텔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과감하게 하던 말이 새삼 뇌리에 파도처럼 전해왔다.

“여보, 여자에게도 남성 못지않는 욕정이 있고 오르가슴의 권리를 느낄 권리가 있어요.”

그날밤 그녀는 정말 한 마리의 경주마 위에 올라탄 기사처럼 되어 흔히 말하는 여성상위의 체형을 택했고 등줄기에 땀이 흠뻑 젖도록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몸부림만 치는 게 아니라 절정에 달했을때는 마치 흐느끼는 것 같은 신음소리를 토하며 끝없는 쾌락의 성을 향해 달리기도 하였다.

사람은 슬프고 괴로울 때도 눈물이 나지만 너무 기분이 좋고 기쁨이 넘칠 때도 눈물이 나는 것을 그날 처음 느끼고 있었다.

“여보 나, 나 죽겠어 오래 더 오래 해요!!”

몇 번씩이나 외쳐대던 아내의 몸부림이 하필이면 왜 비행기 안에서 생각이 날까….

꾸밈의 옷도 허위의 생각도 다 벗어던져 버리고 오로지 강렬한 엑스터시에 몰두하던 그 여자의 그 곱고 아름답던 육신, 작은 고무풍선보다 더 곱고 보드랍던 유방이며 잘록한 허리, 엎드렸을 때 양쪽으로 갈라져 하나의 고상한 예술품 같이, 아니면 잘 익은 황도 복숭아 같기도 하였고 어찌보면 황혼결에 바라보는 멋진 능선 같았던 히프도 이젠 땅속에서 한줌의 흙으로 변해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비행기는 육중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제주 비행장에 착륙을 했다.

장준식은 윤보라를 만나기 전에 우도를 먼저 찾았다.

그 이유는 그때 아내와 여행을 왔을 때도 ‘섬속의 섬’이라 불리는 그곳 우도의 절경에 반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랬다. 청량해풍이 너무 시원했고 코 끝에 스쳐오던 싱싱한 풀 향기에 반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 우도에는 특산물인 땅콩의 맛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고소한 땅콩을 한줌 쥐고 바닷가를 거닐면서 껍질을 까서 하나씩 남편 입에 넣어주며 행복한 미소를 던져주던 아내의 생전 모습을 그곳 우도에서 한번 더 느껴보고 싶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를 가슴에 안고서도 그는 오늘밤 또 다른 여자, 윤보라와 어떤 일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는 비밀의 여행을 하고 있으니, 그래서 옛 부터 남자는 다 도둑이라 했을까….

하여간 닥터 장준식에게 우도는 아름다운 섬이고 추억의 섬이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어가며 아내가 손을 잡고 내 귀에다 이런 애교를 떨었었지. 

“여보, 오늘밤 나를 미치게 한번 해 줄래요…?” 하고는 사춘기 소녀처럼 귓불이 빨갛게 달아오르던 여자, 나는 그녀에게 진정 행복과 만족을 준 남자인가…? 내가 하고 싶을때만 욕심을 채우고는 거친 숨결만 그녀의 귓가에 남기고 옆으로 미끄러져 코를 골고 깊은 잠속으로 빠진 못난 남자는 아니었을까…?

남녀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관계 전의 전희도 중요하지만 마친 뒤의 따스한 애정의 손길로 애무를 잘해주는 후희가 더욱 중요함을 젊은 날에는 몰랐지.

만일 오늘저녁 윤보라와 이야기가 잘 되어 그녀와 재혼을 하게 되면 나는 내 아내에게 못다 준 사랑을 그녀에게 다 물려줘야지….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