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일상의 즐거움, 정원 생활을 합시다!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일상의 즐거움, 정원 생활을 합시다!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3.07.31 11:37
  • 호수 88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가드닝’ 잘 할 수 있는 비법은

매일 집안을 쓸고 다듬듯이

잡초 뽑고 새 식물을 심는 일들을

매일 거르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

그러면 소리 없이 큰 보답 찾아와

최근 며칠의 일과가 온통 정리다. 집수리를 위해 집안의 묵은 짐을 빼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짐이라는 말이 ‘짊어지다’라는 말에서 나온 말인 듯한데, 그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살 때는 분명 필요했고, 잘 쓸 것 같았지만 어느새 필요 없어 방치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이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업고 살아가니 꿈자리가 어수선하고, 어깨가 그리도 무거웠던 게 아니였을지. 

‘그래 이참에 다 버리자’ 했는데, 버리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버리고, 비우는 게 참으로 어렵다. 이건 놔두면 나중에 쓸 것 같고, 저건 누군가의 기억이 선명하고, 이건 버리기가 아깝고. 수많은 이유들이 발목을 잡는다. 어쩌면 물건에도 마음이 있어서 버려지지 않으려고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일 중에 하나가 ‘명상’이다. 몇 번인가 해보려고 선생님도 찾아가고, 노력도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선생님들이 명상은 보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물의 온도를 낮추어 생각을 가라앉히는 것이라는데 이론적으로는 알겠다. 그러나 그것이 시키는 대로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얼마 전 신기한 경험을 했다. 새벽이지만 이미 온도가 후끈하게 올라간 정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드는 모기에 뜯기면서도 따가운 줄도 모르고, 두어 시간 정도 잡초를 뽑았다. 온몸이 축 쳐져서 툇마루 그늘에 걸터앉아 시원한 얼음물 한 컵은 마시다 문득 하늘을 보니 여름 하늘이 그대로 청명했다. 

그러다 문득 얼굴과 몸은 벌겋게 열을 뿜어대는데 마음과 정신이 묘하게 고요히 가라앉아 있는 느낌. 이게 어쩌면 명상이었겠구나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친정엄마는 마음이 심란한 날은 유난히 청소를 열심히 하셨다. 묵은 살림살이를 꺼내놓고, 닦고, 정리하고, 버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어머니도 청소를 하시며 명상을 했던 듯 싶다. 

묵은 살림을 정리하다 보니 10년 전 이삿짐을 풀면서 넣어두고 지금까지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은 것도 있었다. 먼지야말로 가볍고도 가벼운 물질이지만, 묵은 먼지는 가볍지도 않다. 

그곳에 눌러져 있던 시간만큼 찐득하게 붙어서 부는 힘만으로는 털어지지도 않는다. 끈적거리는 먼지를 긁어내며 맘속에서 울림이 생긴다. 누구를 원망하나 싶다. 

사실 매일 이 짓을 해야 하나, 싶어지는 일들이 있다. 청소, 빨래, 설거지, 정리정돈. 이 중요할 것 없는 하찮아 보이는 일이 매일 눈을 뜨면 해야 할 리스트에 늘 자리를 잡는다. 안 해도 그만일 듯 하지만, 하루라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삶은 어느새 엉망이 돼 버린다.

요즘 나는 가드닝이라는 표현보다는 ‘정원 생활’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매일 잡초를 뽑고, 늘어지고 시든 식물을 제거하고, 그리고 새롭게 또 식물을 심는 이 끝없는 정원 일이 집안 살림살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드닝을 잘 할 수 있는 노하우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런 대답도 한다. 그냥 정원 생활을 하시면 된다고. 매일 집안을 쓸고 닦고 다듬듯이 정원도 그리하면 된다고. 

필요한 건 특별한 노하우가 아니라 특별한 마음가짐이다. 어쩌다 들여다보는 정원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속에 정원이 자리하면 그게 가장 좋다. 

이제 정원엔 늦여름이 찾아오는 중이다. 본격적인 땡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이도 순식간에 찬바람 부는 철로 변화할 것이다. 

매일 변화하는 정원의 날씨 속에 우리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게 진정한 가드닝이고, 정원 생활이다.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행위가 힘겨움보다 더 큰 보답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이다. 그게 매일 소리 소문도 없이 밝음으로, 건강함으로, 행복함으로 우리 집 문턱을 찾아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