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디카시 산책] 세월 앞에 장사 없다
  •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 승인 2023.08.07 11:19
  • 호수 8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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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앞에 장사 없다

부딪히고 깎이고 썩어 문드러지고

 

온 몸으로 맞서보지만

감정은 죽고 기억만 꿋꿋이 남아


세월은 모든 것을 성장시켰다가 결국에는 소멸시킨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왔던 시간만큼 다시 되돌려 보내는 시간을 적선처럼 던져준다. 이리저리 휘둘리고 치이고 깎이다 보면 어느 사이 존재는 천천히 사라져버린다. 시공간의 얽매임이 ‘존재’이므로 존재가 없어짐으로써 모든 기억 속에서도 완전히 잊혀지고 그때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인가.

나무가 자라고 있던 자리에 물길이 났다. 뜻하지 않은 이 상황이 한 존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면 이 존재 자체가 완전히 소멸할 것인가. 푸르게 살아가던 날들이 이제는 기억만 붙들고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고 있다. 세월을 이겨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바위도 시간이 지나면 부서진다. 단단한 쇠도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어 바스러지지 않는가. 오늘이 가장 소중한 날이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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