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42] 패설(稗說)은 어떤 내용인가 “민초들이 즐겨보던 소설… 규수들 은비녀 팔아 사보기도”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42] 패설(稗說)은 어떤 내용인가 “민초들이 즐겨보던 소설… 규수들 은비녀 팔아 사보기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8.14 13:56
  • 호수 8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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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행하던 소설의 한 장르인 패설은 당시의 성 풍속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림은 신윤복의 풍속도.
조선 후기 유행하던 소설의 한 장르인 패설은 당시의 성 풍속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림은 신윤복의 풍속도.

조선 후기 민간에 나돈 풍문을 소설화한 패설… 거의가 작자 불명

성 소재로 한 노골적 이야기 많아… 현대인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조선 후기에 유행하던 ‘패설’(稗說). 패설은 민간에 나도는 풍설이나 소문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점차 소설을 지칭하는 용어로 바뀌었다. 국문으로 된 것은 언패(諺稗)·언서고담(諺書古談) 등으로 불렸다. 안방 규수들이 은비녀를 팔아 패설을 사볼 정도로 당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국문 패설 대부분이 작자 불명이다. 소설을 짓는 일이 명예롭지 않다고 여겨 이름을 숨겼기 때문이다. 

패설의 소재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 문물제도, 세태 풍속, 고을 이름 등 다양하다. 특히 성을 소재로 한 패설이 인기를 끌었다. 엄격한 유교 윤리의 조선시대에도 패설은 현대인도 놀랄 정도로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 

패설집 ‘소낭’(笑囊)은 18세기 중후반 조선에 전해지는 패설을 엮은 책이다. ‘소낭’은 웃음주머니란 의미로 총 135편의 이야기가 한문으로 실려 있다. 소낭 중 성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점괘

한 선비가 이웃집 맹인의 아내를 꾀어 막 즐거움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맹인은 밖에서 들어오다가 집에 선비가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선비는 소리 내어 맹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 이웃에 있는 아낙을 꾀어 간통을 하고 있네. 자네는 나를 위하여 점을 치며 밖에서 잠깐만 기다려주게.”

그래서 맹인은 문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점을 치다가 한 괘를 얻고는 놀라 말했다.

“일이 매우 급하니 빨리 하십시오. 빨리! 그 남편이 막 문 앞까지 왔다는 점괘입니다.”

◇통인과 좌수

촌 아낙이 그 고을 통인과 좌수 두 사람과 몰래 정분을 나누고 있었다. 통인은 수령의 잔심부름을 하던 구실아치로 관노비 출신들이 담당했다. 좌수는 자치기구인 향청의 우두머리이다. 일찍이 통인과 간통하고 있을 때 좌수가 아낙을 찾아왔다. 방문을 열기 전에 아낙이 급히 이불로 통인을 말아 이부자리 옆에 세워놓고 좌수를 맞았다.

아낙이 좌수와 간통할 즈음에 이번에는 아낙의 남편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막 문을 열려고 했다. 아낙은 급히 좌수에게 어깨를 들썩이며 문을 나가되, 큰 소리로 “그놈을 잡아 한 주먹에 때려죽이지 못하는 게 한스럽다”라고 외치라고 가르쳐 주었다. 좌수는 그 말대로 하며 나갔다. 남편은 방으로 들어오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좌수가 무슨 일로 우리 집에 왔대?”

아낙은 짐짓 놀란 척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통인을 세워둔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속을 들여다보세요. 제가 아니었다면 저 통인은 이미 죽었을 거에요. 저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좌수는 저 아이를 죽을 듯이 쫓아 오더라고요. 좌수를 피해 우리 집까지 쫓겨 온 아이가 가여워 제가 몰래 저 자리에 숨겨주었어요. 그런데 좌수가 쫓아와서는 제게도 캐묻더군요. 통인이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더니 저렇게 화를 내며 가네요. 남편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더라.

조선 후기의 패설 집 중 유일하게 저자의 실명(장한종·1768~1815년)이 밝혀진 책이 ‘어수신화’(禦睡新話)이다. 어수신화는 잠을 막는 새로운 이야기란 뜻이다. 장한종은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와 함께 금강산을 그리려 다녀왔던 화원 김응환의 사위다. 수원 감목관을 지내면서 책 제목대로 잠을 쫓으려는 목적에서 지었다고 한다. 어우신화에는 총 135편의 이야기가 들어있고, 그 중 39편이 성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 중 한 편을 소개한다.

◇체모합산(髢毛盍散) : 다리가 모두 흐트러지다.

전라감사 대부인(大夫人·남의 어머니를 높이 부르는 말)의 환갑날, 관아에서는 잔치를 열어 많은 사람을 초청하였다. 인근 지역 수령의 아내와 경향(京鄕) 각지 친척집의 부인들도 모두 모였다. 그런데 전주 판관(判官·종5품)의 아내만 늦도록 오지 않았다. 그래서 관아의 안채에서는 어린 계집종을 보내 전주판관의 아내에게 빨리 오라는 말을 전하게 했다.

계집종이 전주 관아에 갔더니, 관아는 조용하여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방문도 잠겨 있었다. 그래서 계집종이 창틈으로 방 안을 엿보았더니 판관 부부가 막 일을 벌이고 있었다. 계집종은 웃음을 참고 물러나, 관아의 안채를 돌보는 다른 종에게 말만 전하고 돌아왔다.

다시 잔치가 벌어지는 곳으로 돌아온 계집종이 이렇게 말했다.

“판관 사또 마나님이 손으로는 머리에 얹은 ‘다리’(체모·髢毛·예전에 여자들이 머리숱이 많아 보이라고 덧넣었던 딴 머리)를 잡으시고, 두 눈은 감긴 듯이 정신을 잃어 의식이 없는 상태로 판관 사또의 배 아래에 계셔서 직접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모든 부인들이 웃느라 관아는 한바탕 시끄러웠다. 다만 대부인은 본래 귀가 어두워 사람의 말을 명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대부인이 사람들에게 묻자 한 부인이 답했다.

“전주판관 부인이 판관과 더불어 어떠한 일을 했다고 합니다.”

대부인은 귀가 어두워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자네는 무슨 말을 하는가?”

이에 그 부인이 큰 소리로 두 번 아뢰고, 다시 세 번 아뢰고 있을 때였다. 전주판관 부인의 행차가 이미 도착하여, 판관 부인이 가마에서 내려 문 바깥쪽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문득 방 안에서 자기에 대해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판관 부인은 얼굴이 화끈거려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었다. 겨우겨우 대부인 앞에 나아가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대부인은 웃음을 머금고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늙은이가 여기에 있다가 아까 이 고을 마마께서 한바탕 좋은 일을 벌였다는 말을 들었네. 그런데도 마마의 다리는 아직 헝클어지지 않았으니 이상하도다. 예전에 전라감사 부친의 생신 때였지. 그분 역시 이런 일을 좋아해서, 그때마다 내가 그 욕을 받았지. 그때는 다리가 항상 흐트러져서 말이야.”

이 말을 들은 부인들은 모두 입을 막고 웃음을 참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사는 ‘조선후기 성소화선집’(문학사상)을 참고로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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