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가장 먼 거리, 가장 가까운 거리 / 이호선
[백세시대 금요칼럼] 가장 먼 거리, 가장 가까운 거리 / 이호선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 승인 2023.08.21 11:25
  • 호수 8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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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가장 가까이서 지각을 많이 하듯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

폭언하며 아프게 하지 않았는지

이제는 눈과 혀의 습관을 바꾸어

격려와 축복하는 선택을 해보자

‘학교가 가까운 애들이 지각을 많이 한다.’ 학교 바로 앞에 살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지각을 했던 우리 반 아이에게 하신 담임선생님의 말씀이다. 생각해보면 버스로 40분 이상 가서도 10분을 더 걸어가야 했던 나는 거의 매일 1등으로 학교에 오곤 했다. 정말로 먼 거리에 사는 아이들은 일찍 오고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는 늘 지각을 하는 걸까? 

모든 사례에 적용이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가깝다는 안일함이 결국 3년의 지각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멀리 살며 각종 변수들까지 고려해야 하는 원거리 통학생들의 심리적 불안이 이들에게 개근상을 안겨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가장 가까이 있어 늦고, 가장 멀리 있어 이르게 도착하는 면은 참으로 가족의 관계 같다.

다툼과 비난이 일상인 가족들을 가만 살펴보면, 밖에서는 둘도 없는 신사에 호인이다. 그런 신사에 호인이라도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는 순간, 말의 칼날을 날리고 거친 말들을 쏟아내며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아픔을 만들지 않았는가. 

이렇게 일상에서 가족에 대해 공격적인 언사들을 반복하며 가족 간 대화의 벽을 만드는 특성을 ‘일상적 공격성’이라고 한다. 이런 일상적 공격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지금 이 말을 해도, 지금 이 행동을 해도 우리는 가족이고, 우리는 다시 만나는 사람이라 반드시 화해하거나 서로를 용서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은 가장 공격적이며 가장 사과를 안하고 가장 용서가 힘든 집단이다.  

일상적 공격성은 사과와 용서로 이어지기보다는 반복과 심화로 이어져 가족 간 상처의 깊이를 더하고 가족 간 거리를 가장 멀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은 습관이 되어, 사과와 용서의 이유조차 잊고 긴 세월을 살아간다. 

세월이 지나고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어서도 우리가 일상적 공격성을 이어가고, 사과나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누적된 말과 행위가 만들어낸 둔감성 때문이다. 

막상 어릴 때는 힘들었던 내 가족이, 사회로 나가 세상의 다른 가족들을 보게 되면서 그제서야 ‘우리 집은 문제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걸 알지라도, 습관은 어찌나 강력하고 무서운지 변화의 운을 떼기는 쉽지 않다. 

일상적 공격성이 장기화되고 가족 간 공격성이 심화되면 매일 지각하는 학생처럼 도덕적 둔감성이 생겨난다. 집안에서의 욕설이나 모욕과 비난은 당연한 것이고 동시에 집 밖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 패턴이 반복되고 이어지는 경우가 생겨난다. 

학교 다닐 때의 지각과 결석은 생애 성실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듯, 생애 공격성과 가족 간 배려 능력은 생애의 관계성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지각의 문제를 넘어 많은 일에 이런 경향이 나타나며 나이가 들어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그럼 나이 들어가며 학습된 ‘일상적 공격성’은 변화가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배우고 새로이 시도해가며 새롭고 괜찮은 사람이 된다. 우리가 ‘사람됨’이라는 말처럼 인간은 되어가는 존재(becoming)이고, 이 되어가는 시점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의 눈의 습관과 혀의 습관을 바꾸어본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고 아이가 아닌 우리들이라 좋은 선택을 더 빠르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훌륭한 어른은 좋은 선택을 하는 사람임이 확실하다.

부족과 결함을 보는 눈을 안타까움과 가능성을 보는 시선으로 변경해보자. 비난과 욕설을 뱉어내던 그 입에서 격려와 축복의 혀를 내어보자. 어른의 눈, 어른의 혀를 사용하기 시작해보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과 관계력이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일상적 공격성으로 성장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해도, 지금부터 우리의 눈과 혀가 우리가 이제는 다른 사람임을 보여주고 알려줄 것이다. 사람은 다른 선택을 통해 다른 관계로 들어가게 된다.

집이 가까운 아이들은 늘 지각한다는 말이 고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선입견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역시 모든 사례가 마치 우리의 경험 속에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의 생각을 좋고 올바른 문장, 심지어 어른에게 기대할만한 우아한 문장으로 정립해보자. 

‘내일은 5분 더 일찍 올 수 있을 거야. 너는 좋은 선택을 할 거야’라고 말해보자. 일상적 공격성과 같은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이 가능성의 시선으로 바뀌도록, 집 가까운 애들이 ‘좋은 선택’을 하도록 말의 시간을 만들어주자. 

가장 먼 거리가 가장 큰 칭찬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가 먼 미래의 가능성이 되도록 어른의 눈매와 어른의 입매로 일상적 공격성을 좋은 선택으로 바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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