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연령차별 극복하고 세대갈등 줄이기 위해 노력을 / 김광일
[백세시대 금요칼럼] 연령차별 극복하고 세대갈등 줄이기 위해 노력을 / 김광일
  •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 승인 2023.09.18 10:43
  • 호수 8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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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노화 과정 겪는 모든 고령자들이

건강과 역할 수행에 문제 있다고 

보는 건 올바르지 않아

노년층도 청년층의 고민에 대해

그들 입장에서 이해할 필요 있어

얼마 전 인터뷰를 하다가 ‘노화는 질병’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노령을 진단코드에 추가하기로 했다면서 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질문을 받았다. 

노화를 늦추거나 예방한다는 뉴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미국이나 중동의 큰 부자들이 노화연구에 많은 연구비를 투자한다는 소식도 접하게 된다. ‘노화의 종말’이라는 베스트셀러에서도 ‘노화는 질병이고 극복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노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노화를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모두 관심을 가지게 되는듯 하다. 그러면 과연 노화는 질병이고 노령은 진단명에 포함돼야 할 병적 상태일까?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노령이라는 진단명 코드가 새로 생기면 모든 노인은 환자가 된다. 특별한 질환이 없고 건강한 노인에 진단명 코드를 부여하고 환자로 간주한다는 것은 노화와 고령자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가지는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WHO에서 노령에 진단코드를 부여한다는 의견이 나왔을 때 많은 반대가 있었고 결국 취소되었는데, 자세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아직도 오해를 하고 계신 듯 하다. 

노화에 대한 논란은 노화를 정상적인 생리적 현상으로 보고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질병으로 간주하여 치료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점으로 볼 것인지에 관한 논란에서 시작되지만, 더 나아가면 고령자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즉, 이는 궁극적으로 연령차별(年齡差別, ageism)에 관한 문제이다. 

연령차별은 특정 연령대의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을 일컫는 용어로 노인들에 대한 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의 저명한 노인의학자인 로버트 N. 버틀러가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보다 널리 사용되는 용어인 인종차별, 성차별이 단순히 인종이나 성별에 따라 차별을 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의미이듯이 연령차별은 연령이라는 숫자에 의해 어떠한 편견을 가지는 것이 옳지 않음을 주장하는 용어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고령자를 폄훼하는 용어들을 들을 수 있는데, 특히 젊은층에서 사용하는 은어는 주로 노인이나 기성세대를 낮춰보거나 행동을 비난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으며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달라진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고 과거를 언급하는 어른들을 비하할 때 사용된다. 

또한 고령층은 요즈음 젊은이들이 이기적이고 참을성이 적으며 공동체 의식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고 비난한다. 연금문제, 정년문제, 그리고 지하철 무임승차 등의 복지제도 등 세대 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는 민감한 문제에 있어서는 세대 간의 의견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고정관념에 기반한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립의 모습으로 혐오와 증오의 표현이 난무하고 있어 매우 염려스럽다. 

노화를 늦추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노화의 과정을 겪은 고령자들이 모두 건강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따라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누릴 수 없거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제한을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젊은 연령층은 노화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늙어가는 것의 의미를 이해해야 고령자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노년층은 ‘예전에는 이러했는데’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지금 청년층이 고민하는 문제를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만 세대 간의 갈등을 줄이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첫 시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자신의 젊었을 때를 되돌아보면 이해될 수 있는 젊은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고, 젊은 청년들은 노화가 질병이나 상실의 과정이 아니고 노인들이 단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과 무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고령자의 많은 경험과 지혜로움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겠다. 이러한 태도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나갈 때에 세대 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보다 살기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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