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문식 기자의 만만담(滿漫談) ⑤
함문식 기자의 만만담(滿漫談) ⑤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09.04 16:53
  • 호수 1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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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지난 9월 2일은 안중근 의사의 탄신 130주년이었다. 10월 26일은 의거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리는 각종 문화행사도 마련됐다. 6월에는 오페라 ‘대한국인 안중근’이 공연됐고, 오는 10월 26일에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뮤지컬 ‘영웅’이 공연될 예정이다. 소설가 이문열은 조선일보에 안중근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불멸’을 연재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도 한국땅을 밟았다. 2006년 안의사의 의거지 중국 하얼빈시에 세워졌던 안중근 동상은 세워진 지 11일 만에 중국정부의 반대로 철거됐고, 3년 가까이 제작자 이진학씨의 사무실에 보관되다가 이번에 안의사 의거 100주년과 탄신 130주년을 맞아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동상이 설치될 장소는 물론, 거처조차 정하지 못해 효창공원에서 하루내 기다리다가 현재는 서울 모처에 보관중이라고 한다. 마치 안 의사가 홀대받는 듯 해 씁쓸한 풍경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테러행위였다. 당시 일본 내 온건평화주의자로 알려졌던 이토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동양 제국(諸國)이 힘을 모아 대처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도 이런 이토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토의 주장은 말 그대로 ‘문화정치’를 위한 수단이었음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을사조약이후 초대 통감이 된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문화와 사회적으로 조선을 병합하기 시작했고, 극도의 혼란기에 처해 있었던 조선사회는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이토의 합병화에 말려들었다.

겉으로는 대의를 내세우며 감언(甘言)을 일삼지만 시커먼 뱃속이 드러나게 되면 그 역함은 참을 수 없는 법. 안 의사는 이토를 저격함으로써 우리민족이 일본의 지배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 만방에 여실히 알렸다.

좋은 말로 사람을 현혹하기는 쉬우나 통찰력과 혜안을 가진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 역함이 더욱 끔찍하게 보이는 법이다. 관리(官吏)와 선량(選良)들이 진정성을 가지지 못한 채 ‘좋은 말’로 포장하면서 국민을 살살 달래는 방법을 쓰기에는 이제 국민들의 의식이 너무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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