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몸 안에서 병이 돌아다닌다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몸 안에서 병이 돌아다닌다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3.10.30 11:06
  • 호수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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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90세 장모님, 코로나 사태 이후

외출 제한되면서 건강 급속 악화

우울증에 건강염려증도 심각

협진, 심리치료 등 절실한데

대학병원 노년내과도 기대이하

올해 90세인 장모님은 젊었을 때 고된 시집살이 중에도 사회활동을 많이 했다. 성격도 활달해 친구도 많았다. 늘 책을 끼고 다녔고 60세 넘어 문학 서클에 가입하기도 했다. 사위인 나하고도 격의 없이 지냈다. 운동도 꾸준히 해서 건강에 별 문제가 없었다. 8년 전 장인어른이 세상을 뜬 후에도 혼자 꿋꿋이 잘 사셨다. 

그런데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 사태 3년간 바깥 출입이 제한되고 복지관이나 노인대학도 가지 못하게 됐다. 같이 어울리면서 삶에 재미와 의미를 부여한 많은 인간관계가 끊어졌다. 친한 친구들도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서 질병이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30년 전부터 보통 사람들처럼 고혈압, 당뇨, 콜레스테롤 약을 복용해 왔으나 상태가 중하지는 않았다. 10년 전부터 어깨와 옆구리 근육통, 무릎연골 마모 등의 문제로 동네 외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에서 수시로 통증 주사를 맞으면서도 큰 문제 없이 지냈다. 그러다 2021년 가을부터 발이 시리기 시작했다. 2022년 봄 대학병원 내분비내과에서 당뇨 합병증이라 하여 말초신경염 약을 처방을 받아 복용하기 시작했다. 

6개월이 지나도 발 시린 게 여전하고, 가슴 울렁거림과 메스꺼움을 동반한 불안증이 새로 나타났다. 2022년 겨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자율신경 검사 결과 우울증으로 판명돼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발 시린 것도 우울증 때문이라 했다. 몇 주가 지나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다른 대학병원에 가서 내분비내과와 정신건강의학과의 협진을 시작했음에도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한방에도 가봤으나 별무효과였다.  

과거에 불면증 때문에 가끔 수면제를 복용했으나 발 시리기 시작한 이후 잠을 자기 위해 꼭 수면제를 복용해야 하고, 복용량을 늘려도 하루 밤에 3∽4회 깨는 경우가 많다. 오후에 불안증이 심해지는 경우 불안장애 약을 추가로 복용한다. 발 시린 것을 완화하기 위해 늘 핫팩을 붙이고 있으나 별 효과가 없고 지금도 계속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식욕촉진제를 복용하면 식욕이 좀 오르지만, 식사를 충분히 하지 못해 체중감소가 현저하며, 보행이 힘들어 보행보조로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집과 길에서 4회 낙상했으나 다행히 골절은 없었다. 현재 가장 큰 고통은 발 시린 것, 불면증, 불안증인데 거의 개선되지 않아 신체 및 인지 장애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직 의식은 또렷하지만 악화되지 않도록 세심한 관찰과 돌봄이 필요하다.

장모님은 서울 우리 집에 자주 오지만 자식 신세 안 지겠다고 주로 경기도에 혼자 살고 있다. 근처엔 경로당도 없다. 거기 계실 땐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요양등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로 주간보호소를 다니고 있다. 

노환과 고독에 의한 우울증을 완화하고, 일정 부분 돌봄 서비스가 필요해 노인장기요양을 신청했다. 일 년 전엔 거부되었는데 이번엔 승인됐다. 제도를 잘 활용하면 상태가 개선될 것이라 희망해 본다. 하루라도 고통과 불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가 너무 오래 산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시는 장모님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나도 도움을 드리기 어려운 문제를 몇 가지 발견했다. 

첫째, 우울증을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보통 때는 괜찮다가도 어떤 상황에 처하면 증상이 돌발적으로 나타난다. 그 상황이라는 게 주로 혼자 있는 경우이다. 의사는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 낫는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계속 복용하면 정말 회복이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장모님은 건강염려증에 의한 신체화 장애를 겪는 것 같다. 발 시린 것 말고도, 몸 안에서 병이 돌아다닌다는 말처럼 예전에 앓았던 병이 재발하고 새로운 부위에 문제가 생긴다. 자녀들이 장모님에게 건강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아픔을 느끼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장모님이 앞으로도 계속 고통을 호소한다면 자녀들이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절한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둘째, 환자 본인이 약을 조절한다. 하루에 복용하는 약이 20알 정도나 된다. 어떤 약을 언제 어떻게 복용해야 할지 혼동될 만큼 여러 종류이다 보니 분명 오남용이 있을 터이고, 거기다가 누구로부터 얘기를 듣거나 본인의 기분에 따라 이 약은 계속 먹고 저 약은 뺀다. 

진통제는 용법이 다른 것을 여러 다른 약국에서 구입해 보관하고 있다가 본인이 판단하여 복용한다. 자녀들이 확인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본인 스스로 복약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합병증이 많은 고령환자를 위해 복약순응도(처방받은대로 복용량과 복용방법을 준수하는 정도)를 높일 수 있는 디지털 앱 같은 것이 개발돼야 하겠다.     

셋째, 병원의 노년내과는 부실하다. 비전문가들끼리 방황하지 않고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 노년내과를 두 군데 갔는데 둘 다 실망이었다. 한 곳은 다짜고짜 치매검사를 하자고 했고, 다른 곳은 환자의 병력을 잘 들으려 하지도 않고 말초순환 개선제 하나를 찍! 처방해 주었다. 노화와 질병이 혼합되어 있는 고령환자에게 현재의 진료 방법을 유지할지 혹은 수정할지, 그리고 본인이 감내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할 시간도 없어 보였다. 

고령 환자는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의사가 필요하다는 기초상식조차 없는 듯했다. 상급종합병원에는 유병장수의 질곡에 시달리는 노인들을 위해 의료진의 협진, 그리고 심리치료사와 사회복지사 등 다른 전문직과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노인병원(geriatric hospital)의 설치가 꼭 필요하다. 그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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