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홍범도 장군이 겪으시는 날벼락 / 이동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홍범도 장군이 겪으시는 날벼락 / 이동순
  • 이동순 한국대중문화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23.11.06 10:24
  • 호수 8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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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한국대중문화힐링센터 대표
이동순 한국대중문화힐링센터 대표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영웅인

 독립군 홍범도 장군을 폄하하고

‘육사의 흉상 철거하겠다’ 발표

 홍 장군을 ‘빨갱이’로 모는 건

 투사에 대한 모욕이자 역사테러

뜻밖에 겪는 불행을 우리는 날벼락, 혹은 횡액이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가 최근 펼쳐가고 있는 아주 못된 날벼락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과거의 이미 검증된 역사, 민족사를 뒤집어엎고 부정하는 짓이다. 

학자들의 연구와 논문을 통해 규명된 우리의 독립운동사, 독립투쟁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상식과 교양이 된 지 오래다. 그러한 상식과 교양을 하루아침에 전복시키고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억지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독립을 위한 국내외 항쟁의 역사가 있었으므로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곡으로 점철된 뉴라이트 계열의 기형적 인식을 강조하는 부류들은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인 모두에게 은혜의 시기였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근대화의 터전을 힘들게 닦았으므로 그 혜택을 우리가 경제발전으로 누린다고 말한다. 그런 논리의 연장 속에서 일제의 위안부 운영이나 징용도 결코 강제성을 띠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발적이었다고 항변한다. 

이러한 뉴라이트의 관점은 한국의 독립에서 독립운동가의 노력은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고, 오로지 미국의 원자탄 투척으로 얻어진 혜택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일본과 미국을 숭배하고 극도의 존경심을 갖는다. 

미국의 전적인 힘에 의탁해서 정권을 잡았던 이승만을 국부로 추대하며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명칭을 아예 바꾸자는 주장을 공공연히 해댄다. 그들의 관점에서 김구, 안창호, 윤봉길, 안중근, 홍범도, 나석주, 강우규 지사들은 모두 불온한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독립운동사를 강조하는 관점 자체가 일본의 감정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로 간주하며 늘 일본의 눈치를 살핀다. 

최근 육군사관학교 본관 앞의 다섯 분 독립투사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공식적 발표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두 뉴라이트 세력이 저지른 음모의 결과였다. 이런 막된 발표에 국민적 저항이 거칠어지자 다섯 독립투사 중 네 분은 육사 경내에 그대로 두고, 오직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철거하기로 방침을 정리했다고 발표했다. 

바로 이 대목을 한번 짚어보자. 철거란 말의 뜻은 이미 설치되어있는 건물이나 시설 따위를 거두어 치운다는 의미이다. 독립투사의 흉상을 옮기는 일을 어찌 ‘철거’라고 표현하는가. 너무 불경스럽다. 이런 일을 추진하는 관계자들의 의식 속에서 독립투사들의 존재는 못 쓰게 된 폐기물이나 쓰레기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철거한 자리에다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나 트루먼 대통령, 혹은 만주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 흉상을 건립하려는 복안을 애당초 가졌었다. 

홍범도 장군의 경우는 지난 시기 여러 정부를 통해 건국공로 훈장 포상도 받았고, 또 불과 2년 전에는 묻혀있던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의 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오신 뒤로 무탈했으면 아무 문제도 아니었을 터이나 작금에 빚어지고 있는 홍범도 장군에 대한 무참한 공격이나 매도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어찌 이렇게 우리가 도리를 모르는 민족인가. 

1868년생인 홍범도 장군은 조선 후기에 태어나신 봉건왕조시대 사람이다. 러시아에서 볼세비키혁명이 일어난 것이 1917년이니 당시 홍 장군은 51세의 노인이었다. 그런 분을 어찌 ‘뼛속까지 붉은 빨갱이’란 험한 욕설로 모욕하고 매도하며 함부로 유린을 해대는가. 

봉오동,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아무르강을 건너 스보보드니(자유) 시로 옮겨갔을 때 러시아 측에서 요구하는 무기반납을 둘러싸고 독립군 부대는 두 파로 갈라졌다. 반납지지파와 불응파가 그것이다. 

홍 장군은 일단 무기를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반납을 한 뒤 적절한 시기에 되돌려 받아 일제를 타도하는 일에 나서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응파는 끝까지 무기를 내어놓지 않았고, 이를 빌미로 러시아는 군대를 동원해서 불응파를 공격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홍 장군을 매도하는 세력들은 자유시참변의 모든 책임을 홍범도 장군에게 전가했다. 

이번 과정에서 국방부가 발표한 공식문서에는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 수천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며 전혀 당치도 않는 주장을 함부로 쏟아내었다. 당시 홍 장군은 이미 무기를 반납하고 스보보드니를 떠나있었다. 수천 명 죽음이란 말도 전혀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는 충동적 언설에 불과하다. 

이 여러 가지를 보면 첫째 홍범도 장군에게 후손이 없으니 그들에게 아주 만만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다 홍 장군의 출신 성분이 머슴에다 포수 경력을 가졌으니 비천한 신분으로 깔보는 관점의 작용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독립군 연합부대 작전 회의를 할 때 이른바 양반 출신의 독립군들은 홍범도 장군을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필자는 지난 3월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를 펴냈는데 그 직후 이런 사태가 일어나서 나의 책은 독자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홍 장군의 착잡한 심경을 다룬 시집 ‘내가 홍범도다’까지 발간했다. 

이 모든 활동은 홍범도 장군이 고국에 돌아온 뒤로 겪으시는 역사테러, 혹은 부관참시에 대해 앞장서서 방어하려는 내 의지의 작용이다. 내가 스스로 의병시인(義兵詩人)이라 일컫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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