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11.13 10:39
  • 호수 8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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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행동과학자인 존 B.칼훈(1917~1995)은 1968년 미국 정신건강연구소에서 재직 당시 ‘쥐 사회 실험’으로 알려진 ‘유니버스 25’(Universe 25) 실험을 진행한다. 3800마리의 쥐를 수용할 수 있는, 상위포식자가 없는 넒은 공간을 만들고 한 쌍의 쥐를 두었다. 그리고 충분한 먹이와 물도 제공했다. 한 쌍의 쥐는 300여 일이 지나자 660마리로 늘었지만 이후 출산율이 빠르게 하락했다. 개체수는 늘지만 증가율은 빠르게 하락한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출산율 감소와 함께 벌어진 쥐들의 이상행동이었다. 개체가 늘어나면서 공간이 좁아진 쥐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하고 급기야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암컷쥐는 나날이 사나워졌고 경쟁에서 도태된 수컷쥐들은 짝짓기를 포기했다. 600일이 지나자 마지막 세대가 태어났다. 수컷들은 더 이상 교미행위를 하려하지 않았고 암컷은 출산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새끼들을 돌보지 않았다. 실험은 이렇게 충격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50여년이 흐른 2023년 현재, 칼훈의 ‘쥐 사회 실험’은 우리나라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올해 유독 많이 일어난 칼부림 사건을 비롯해 0.7까지 떨어진 합계 출산율은 실험 속의 쥐 사회와 이상하리 만치 닮았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은행 조사국 지역경제팀이 최근 발간한 ‘지역 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연구 보고서가 주목받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전국 각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현실이 우리나라 저출산과 성장잠재력 훼손의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했다. 쥐 사회 속 쥐들처럼 서울로 몰려든 청년들은 높은 집값과 물가에 허덕이며 여유를 상실했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고서가 내놓은 결론도 흥미로웠다. 비수도권 대도시를 거점도시로 발전시켜 숨통을 트이게 해주자는 내용이었다. 보고서는 특정도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전, 부산, 울산 같은 광역시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 주변 도시에 주택들이 들어서 분산되면 수도권 중심으로 폭등한 집값도 안정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메가 서울’ 등 현실과 역행하는 엉뚱한 정책들이 나오는 가운데 한은보고서는 지금까지 본 대안 중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저출산이 이것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정부 엉터리였다.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지 치밀하게 접근하지 않고 해결책도 마련하지 않는다면, 칼훈의 실험처럼 우리나라의 미래는 너무나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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